지구촌의 새 현실로 우리는 무한경쟁을 거론한다.
무한경쟁에서의 생존전략은 차별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사회 각분야에서 전문성이 강조되는 이유도 종국적으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대학의 교육이 점차 세분화.전문화하고 있는 것도이같은 전문지식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사회적인 욕구에 부응하기 위한것이다.
전문지식은 비단 기술의 문제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정책수립에도 다같이요구되는 핵심 변인이다. 우리는 21세기를 준비하는 현시점에서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드시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위원회와 같은 여러 자문기구를 설립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들 자문기구가 원래의 설립목적대로 잘 운영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철저한 검증작업을 토대로 개선방안을 찾아내는 게 무엇보다도중요하다.
여기서 우선 생각해 볼 것은 전문인의 의견이 정책수립에 제대로 반영되고있는가 하는 문제다.
정부 부처나 그밖의 정책수립 기구는 현재 위원회나 자문단과 같은 전문인으로 구성된 자문기구를 갖고 있으며, 제도상 이들의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도록 되어 있다.
법률제정시에도 공청회를 열어 주제발표자가 미리 준비한 연구내용을 발표하고 충분한 토론과정을 거쳐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이같은 전문지식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제도는 형식상으로는 완벽하리만치 잘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실질적이지 못하다는 진단이다.
우선 인적 구성에 문제가 있다. 자문단 구성인원의 직위와 명성에 치우친흔적이 역력하다. 운영방식도 극히 일방적이고 도식적이다. 모양을 갖추고틀을 맞추기 위한 형식적인 운영이라는 지적이다.
직위와 격이 맞는 명사의 화려한 명단이 필요한 것이다. 직위를 고려한 짜맞추기 인원구성을 하다 보니 현장감이나 "장이"의 전문성이 떨어져 명에 걸맞는 실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위원회와 같은 전문기구의 실상이다.
또하나의 문제는 비록 이들 중 일부가 전문인이라 하더라도 정부의 눈치를살펴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부의 의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의견을 내놓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전문인에 의한 전문지식의 결집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인현실을 감안할 때 현재의 상황은 잘못되어도 너무 잘못되었다. 이는 운영자의관료적 사고와 여론수렴이라는 형식 갖추기 정도로 생각하는 관례적 운영의결과가 아닌가 한다.
명사는 실제로 현장의 문제점을 잘 알지 못한다. 운영실적이 거의 없는 위원회나 자문단 같은 기구를 폐지하거나 통폐합한다는 정부의 방침도 이같은이유로 무용론이 우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문화와 세계화로 초경쟁기반을 닦아야 하는 우리의 급박한 실정을고려한다면 전문집단의 의견이 정책에 더 많이 반영되어야 함은 당연한 귀결이다. 따라서 정부의 전문위원회 통폐합방침은 이같은 대세에 역행하는 정책이 아닌가 한다.
현재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전문가집단의 효율성과 실효성을 강화하는운영책이 모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적 미미를 들어 위원회를 정비하겠다는 것은 현상을 좇는 잘못된 판단이 아닌가 한다.
전문기구를 없애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무슨 이유로 유명무실한 기구로전락했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이를 실질적인 기구로 만들 궁리를 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공청회도 겉돌기는 마찬가지다. 주제발표자와 법령제정자가 따로 노는 상황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공청회 참석자가 제시한 의견이체택되지 못한 이유를 공개적으로나 아니면 개별적으로 설명해주었다는 얘기를아직까지 들은 바 없다.
물론 전문인들의 소극적인 자세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라면특정사안에 대한 이론체계뿐 아니라 경험법칙과 상황판단을 토대로 한 합리적인 패러다임을 도출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럼에도 자기소신을 끝까지 밝히면서 잘잘못을 문제삼는 발표자가 있었다는 실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모두가 형식적인 발표에 형식적인 수용이 관례화됐기 때문에빚어지는 사태가 아닌가 한다.
정보화가 진전될수록, 세계화가 성숙할수록 전문화 경향이 극단화하고 업무의 분권화가 가속화할 것은 자명하다. 분야별 전문인의 전문지식과 경험이경쟁력의 핵심이다.
따라서 오늘의 관행이 고쳐지지 않는 한 전문화는 요원할 것이며, 비생산적인 시행착오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새해에는 전문가의 의견이 정책에 제대로 반영돼 국가와 산업의 경쟁력이강화될 수 있도록 제도운용에서 묘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본사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