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높아지는 가전 "규격장벽"

유럽연합(EU)의 규격장벽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EU는 환경규제에이어 EU통합규격인 CE마크 인증기준을 크게 강화해 가전제품의 수입을제어하는 방패막이로 활용하고 있다.

EU는 그동안 권장사항이었던 냉장고에 대한 소비효율등급 표시제를 하반기부터 의무화하는 등 가전제품에 대한 환경규제를 크게 강화한 데 이어, CE마크 인증의 관건인 전자파내성(EMS) 일반규격에 제품군 규격을 추가해올 1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강제 시행키로 했다는 보도다.

EU가 지난해말 최종 확정한 제품군 규격은 최근 전기.전자제품의 EMS관련 일반규격(GS)중 전자레인지.세탁기.냉장고.타자기.청소기 등 AV기기를 제외한 가정용 전기.전자기기를 별도 분리해 적용하기 위한 것으로, 국제전기표준회의(IEC)에서 제정한 기존 정전기방전(ESD).노이즈방사내성(RS).순간과전압방지(EFT) 등 일반규격과 달리 규정자체가 강화된데다전도내성(CS).순간전압강하.서지 등이 추가돼 CE마크 인증이 한층 까다롭게 됐다.

이에 따라 국내 가전업계는 일반규격의 EMS기준에 따라 CE마크를 이미취득했거나 인증을 추진중인 제품은 물론, 현재 개발하고 있는 제품까지도새로 적용될 제품군 규격을 다시 통과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사실 기술 선진국들은 수입규제전략을 국제무역기구(WTO)출범 이후 가격위주의 직접방식에서 각종 규격의 재개정을 통한 비가격적인 간접방식으로바꾸고 있다.

EU가 올 하반기부터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든 세탁기와 세탁물 건조기에대해 에너지효율등급.에너지소비량.소음발생량 등을 명시한 유럽규격(EN)표준 에너지라벨 부착을 의무화한 것도 규제방식 전환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EU는 지난해 이미 에너지 소비효율을 7등급으로 구분한 EN을 전기제품에적용한데다 앞으로 4년안에 에너지효율을 현재보다 10%이상 상향 조정한다는 방침을 정해 에너지 라운드(ER)의 서막이나 다름없는 강력한 에너지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번 EMS기준 추가도 EU의 간접규제 전략과 맥을 같이하고 있어 국내전자업계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EU의 CE규격 강화로 국내업체들의현지 입지가 크게 좁아지기 때문이다.

에너지 및 환경규격 강화는 그래도 예견됐던 일이라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어느 정도는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확정된 EMS제품군 규격은 세부내용이전혀 알려지지 않아 이 규격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시험을 통과하기까지각종 개발.검사장비를 추가도입하는 데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EMS 일반규격을 통과하기 위해 관련시험설비 도입을 적극 추진해온 국내전자업체들중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는 대기업들까지도 제품군 규격에 적용되는 관련시험장비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처럼 대책마련이 늦어진 것은 국내업체들의 정보력이 부족한 탓이다. 국내업체들이 EU의 강화된 CE규격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해 EMS 관련설비의 확충은 물론 개발.시험.인증.수출 등 밟아야 할 절차에 필요한 준비기간을 벌 수 없었다.

EU역내 바이어들은 벌써부터 일부 가정용 전자제품에 제품군 규격적용을요구해, 한국전장의 전자식 타자기 3개 모델과 대우전자의 냉장고 10개 모델등 일부 제품만이 이 규격을 통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제라도 현지의 규격정보를 정확히 파악해 제품개발시 이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EMS대책은 부품개발부터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업계가엄청난 연구비를 투자해 국산화한 제품이 EU의 EMS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수출에 차질을 빚는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자업계의 세계화전략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현지 정보망을 확충해 선진국들의 새로운 규격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치밀한 개발.수출전략을 세워야 한다. 기술선진국들의 규격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대책마련을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