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수없이 이야기돼 온 "정보화"의 실체는 일반인들 사이에 그리 가시적이지 못한 채 일부 지식인이나 언론들의 "선언적 의미"로 받아들여져 왔던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와서 해외의 여러 사례들이 본격적으로소개되기 시작하고,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나온 사회간접자본(SOC)으로서의 국가 정보고속도로 정책기조는 세계각국의 국가적 정보화에큰 반향을 일으킨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우리는 기존의 생활패턴, 기업경영, 국가행정과는 질적으로 다른 실증적 변화의 세계가 바로 앞에 와 있음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울진군 주민들은 멀리 대구까지 가지 않고종합병원의 원격진료를 받고 있으며, 서울의 한 기업은 책상앞에 앉아 PC를통해 화상회의를 하며 업무를 보고 있다. 이제 주민등록등본을 1분에 떼는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고 집에서 극장예약도 하고 은행업무도 보게 되었다.
업계에서는 윈도95라는 운용체계(OS)제품이 등장하면서 국내는 물론 전세계언론의 "핫이슈"로 다뤄졌으며, 주식시장에 정보통신 관련 첨단주 바람을일으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10여년전 미국 정부가 군사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인터네트가 다지털시대를 대표하는 통신매체로 확실히 자리잡으면서 정보화의 실체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작년은 또한 국가적으로 정보화의 초석을 세운 원년이기도 하다. 정보화촉진기본법이 제정돼 국가의 체계적인 정보화틀이 마련되었고, 나아가 소프트웨어개발촉진법 등도 개정돼 정보산업계에도 큰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정보화 과정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공감을얻지 못하고 진행된 데 따른 문제의 소지도 안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시대를 준비도 없이 부여받게 된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이또다른 소외계층으로 등장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들은 새로운 환경에 맞는조직과 업무 재구축의 압력, 정보화에 따른 실업 불안, 법적.제도적 문제,보안과 윤리의 문제, 교육여건의 열세, 상대적 생활의 질 저하 등 일련의 장애 앞에서 좌절할지 모른다. 농경사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생산성을 일군고도산업사회에서 빈곤과 환경오염의 희생자들이 있었듯이 새로운 시대도 그와 같은 인간군을 만들어 낼 것이다. 정보화가 더 진척되면 그 골은 더욱 깊어지게 마련이다.
이제 정보화시대의 초입단계에서 이들을 설득하고 이끌어나갈 동시대적 사명이 정부와 학계.기업.언론의 뜻있는 지도층에게 주어져 있다. 필요한 정보를누구나 활용할 수 있고 소수가 이를 독점하지 않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며, 열린 의식을 갖고 기꺼이 사용하도록 교육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이 변화의 물결을 강건너 불로 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동참하기를 촉구한다. 그것이 개인이건, 기업이건, 정부건간에 변화의 순간에 고민하게 되고 변화가 가져다줄 고통을 감수하기 싫어하지만, 이제 정보화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는 종결지어졌고, 얼마나 빨리하느냐의 문제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21세기를 5년 앞둔 96년의 초입에서 "대원군의쇄국"이 나라를 살리는 유일한 선택이 아닌 "막다른 골목행"이었다는 것을상기해본다.
〈LG-EDS시스템 사장〉김범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