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 시장의 개척자이자 시장 리더였던 미국의 크레이 리서치사가비주얼 컴퓨팅 시스템 제조업체인 실리콘 그래픽스사(SGI)에 전격 인수됐다. 실리콘 그래픽스는 지난 26일 크레이 리서치를 인수, 합병키로 했다고공식 발표했다. 구체적인 거래 내용은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크레이 리서치의일반주 75%를 실리콘 그래픽스가 주당 30달러씩 현금매입하고 나머지는일대일 주식 교환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관기자
이 경우 인수비용은 총7억달러 정도가 들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실리콘그래픽스가 전격적으로 크레이 리서치를 인수한 것은 하이엔드에서 보급형까지 전체 슈퍼컴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확장형 슈퍼컴퓨팅및 3차원 비주얼시스템의 선두주자인 실리콘 그래픽스가 하이엔드 슈퍼컴 시장을 주도해 온 크레이 리서치를 합병하면 고성능 컴퓨터 업체로서 입지를확고히 다지게 될 것"이란 게 이 회사 에드워드 매크래켄 회장의 말이다.
실제로 양사가 합병하면 매출액이 40억달러에 달하고 슈퍼컴 시장점유율도단숨에 40%를 넘어서는 업체가 탄생한다.
현재 연간 20억달러대로 추정되는 슈퍼컴 시장에서 실리콘 그래픽스의 점유율은 23%, 크레이 리서치는 20%정도다.
그러나 양사의 시장은 차이가 있다. 크레이 리서치는 5백만달러 이상 가격의하이엔드 슈퍼컴 시장에서 51%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반면 실리콘그래픽스는 1백만달러 이하급의 보급형 시장에서 42%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따라서 양사의 합병은 슈퍼컴 분야에서 상호보완적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크레이 리서치의 브랜드 가치를 계속 유지해 나가면서 실리콘 그랙픽스의 확장형 아키텍처를 저가 데스크톱 모델에서 테라(10조)플롭급시스템에 이르기까지 확장하겠다"는 매크래켄 회장의 말도 이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크레이 리서치의 입장에선 이번 결정이 변화된 현실을 인정하고 향후새로운 조직에서의 발전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크레이 리서치는 특히 과학 및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슈퍼컴퓨터 시장을 주도해 왔으나 최근 몇년간 시장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적자를 거듭하다 지난해 말 가까스로 흑자로 돌아서는 등 고전해 왔다.
크레이 리서치의 필립 샘퍼 회장은 이에 대해 "실리콘 그래픽스와 크레이리서치 양사의 결합은 정보기술을 주도하는 새로운 조직으로 자리매김 하는계기"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인수.합병 결정은 다른 한편, 슈퍼컴 시장에서 전문업체 시대가종말을 고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슈퍼컴 전문업체의 퇴조는 군사.과학용을중심으로 주로 사용돼 이들 회사의 하이엔드 슈퍼컴이 냉전 종식 이후 최대수요처인 미정부의 국방연구용 시장을 잃은 것이 중요한 배경이지만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의 눈부신 발전도 이들의 몰락을 재촉한 또다른 요인이었다.
실리콘 그래픽스와 휴렛 패커드.선 마이크로시스템스.IBM등 워크스테이션생산업체들이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기술 발전을 십분 활용, 슈퍼컴급 제품들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전문업체들의 시장을 크게 잠식해 들어갔다.
그 결과 새로운 유형의 슈퍼컴 등 고성능 컴퓨터의 수요가 연간 7.7%씩늘어나는 가운데 크레이 리서치 등 전문업체들이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보였던 5백만달러 이상의 하이엔드 슈퍼컴 수요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최근 몇년사이 싱킹머신, 켄달 스퀘어 리서치 등 전문업체의 파산이 잇따랐고 슈퍼컴 업계 2위에 올랐던 컨벡스 컴퓨터도 지난해 휴렛 패커드에 인수되는 등 전문업체들의 수난이 이어진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 크레이 리서치가 다른 업체에 인수.합병됨으로써 슈퍼컴 전문업체는 이제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