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이 요근래 부쩍 붐빈다는 소식이 남녘으로부터 들려온다. 일본 고베지방의 대지진이후 기능을 못하게 된 고베항을 대신해 동남아로 드나드는 화물선박들이 중간 경유지로 부산항을 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몰려드는 물동량을 다 소화할 수 없게 되자 적체가 심각한 부산항을 확장하기 위한가덕도 개발이 시작됐다.
이같은 부산항의 활기를 우리보다 일본 쪽에서 먼저 일회적 활기가 아닌,한국이 맞은 새로운 호기로 바라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영종도에 조성되고 있는 신공항과 함께 부산항 확장이 이루어지면 한국이 동남아 트래픽의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일본기업들 사이에선 한국의 부상을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이처럼 트래픽 신중심지로서 한국의 부상을 예상하는 근거는 일본이이미 사회간접자본 투자여력이 소진돼 가는 데 반해, 아직도 정부의 경제성장 주도력이 강력한 한국은 사회간접자본 투자여력이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두고 있다.
일본기업들 사이에선 이같이 감지되는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동북아의 중심이 한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과의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는민간기업들의 반응-우리네 인식으로는 다소 호들갑스럽다 싶을 만한-은 얼핏근자 일본 정계의 독도영유권 시비와 배치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달리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직 우리에게 다가오는 호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때 관심을 엉뚱한 데로 돌리게 해 변화의 기선을 잡자는 계산이 바닥에 깔려있다고도 풀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떻든 동아시아 교역에 있어서 한국의 비중은 급격히 커질 전환점에 놓인게 분명해 보인다. 하다못해 일본내 화물운송조차 고베항에서 도쿄 나리타공항으로 바로 향하는 것보다 고베에서 부산을 경유해 나리타로 수송하는 것이더 빠르다고 할 만큼 화물운송에 적체가 심한 일본내 사정이 더더욱 우리의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일본기업들의 의존도를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호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체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민간기업의 입장에서는 우선 일본이 우리네 사회 인프라를 활용하고자 할때를 역으로 활용, 우리의 일본내 진출 교두보를 보다 확실히 구축해야 할것이다.
유통망의 핵으로 우리가 활용해야 할 딜러들 사이에서는 이미 배타적 유통구조의 한계를 인식한 탓인지, 상당한 의식의 변화를 보이고 있으나 우리 기업들이 아직 이같은 일본내 민간부문의 변화를 잘 읽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지적하는 일본 언론인도 있다. 즉 우리 기업은 고작해야 회사 홍보수준 이상에 머물 뿐, 본격적인 일본 상륙을 주저하고 있는 듯하다며 적극적인 자세가아쉽다는 충고다.
그러다보니 딜러들과 손잡고 적극적인 일본 공략에 나서기보다 소극적인덤핑판매에나 나서 딜러들의 역공을 자초하고 있다고 이 일본 언론인은 전한다. 아직 본격적인 행동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동남아 제조품보다 저가의 한국산 가전제품에 대한 일본내 딜러들의 불평이 터져나오기 시작했으며, 따라서머잖아 이 문제가 표면화할 것이라는 우려다.
이제까지와는 좀 다른 차원에서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인 일본시장 공략을시작해도 좋을 때라는 일본인의 충고를 들어야 하는 것은 분명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민간의 호혜적 시장공략이 가능해지려면 사회간접자본 확충 및 체계적운용에 정부가 좀더 과감하고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사회간접자본이라면 아직도 토목공사 수준만 생각하는 정부의 인식전환이 더 시급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영종도 신공항의 경우는 텔레포트 청사진도 나오고 나름대로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의 의지가 감지되지만, 부산항의 경우 아직도 이렇다 할 청사진조차눈에 띄질 않는다. 엄청난 물동량을 소화해내며 동아시아 교역의 중심지로부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정보통신 인프라의 구축이다.
우리 사회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사회간접자본 투자에도 이제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현재 우리 앞에 그 도약을 위한 좋은 기회가 다가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