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세상의 끝, 서킷 보드의 중심 (13)

"네. 서류도 책상도 의자도 없습니다."

긴자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긴 창문이 나 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한네온은 사실 살아 있는 홀로그램 칠이었다.

"그래도 창문이랑 베니스식 블라인드도 있군요."

"베니스식 블라인드요?"

야즈가 묻는다. 그는 블라인드로 다가가더니 끈을 잡아당긴다. 블라인드가내려오자 야즈는 옆에 달린 막대기로 조종한다. 블라인드가 완전히 창문을가리자 방 안이 금세 어두워지고 화면이 그 위로 나타난다.

야즈가 웃는다.

"사토리사 블라인드에 사토리사 실내 장식입니다."

그리고는 한 발짝 물러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사토, 켄지."

블라인드는 자동으로 데이터 베이스를 작동하며 자료를 찾아간다. 기다리는동안 야즈가 설명한다.

"하라다 팀이 같이 있을 때 찍은 마지막 사진입니다. 뭐라 그러죠? 마지막성찬인가요?"

깃을 세우고 놋쇠단추가 달린 검은 재킷이 몸에 딱 달라붙은 해커의 모습이나타난다. 이도 못생기고 피부도 나쁘며 투명한 테에 광학섬유가 달린 고글식 안경을 끼고 있다. 젓가락을 든 채 초밥 카운터에 앉아 있다. 오징어다리 하나가 젓가락 끝에 매달려 있다.

"저자가 사토요?"

"아뇨, 아닙니다. 저기 저 사람입니다."

손에 든 막대기를 돌리자 사진이 돌아간다. 긴 머리를 한 사람들이 몇 화면에 비친다. 모두들 한창 기분좋은 얼굴을 하고 앉아 있다. 카운터 끝쪽에앉은 젊은 남자 하나가 카메라를 똑바로 주시하고 있다. 그의 눈은 잿빛 화산재처럼 빛난다. 그 옆에는 긴 검은 머리로 얼굴이 가려진 젊은 여자가 앉아있다.

그녀의 눈이 고비에게 무언가를 일깨운다. 오랜 옛날에 죽었다고 생각했던것. 그의 전생 속에 또 다른 전생이 있었던가?

"저자가 사토입니다."

야즈가 말한다.

"한번 가까이서 비춰볼까요?"

"그러시죠."

목이 조이는 듯한 이상한 목소리로 고비가 말한다.

"사토말고 그 옆에 앉아 있는 여자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