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3사가 컬러TV.오디오.VCR 등 오디오비디오(AV) 제품의 주력 생산공장을 국내에서 미주.유럽.동남아.중국 등으로 이전하고 있다. 특히 일부 가전제품은 해외생산량이 국내 생산량을 웃돌고 있다는 보도다.
국내 가전업체들은 이미 동남아·중국·유럽·중남미 등에 해외 현지공장을 구축해 전자레인지·세탁기·냉장고 등을 생산하고 있는 데 이어, 이번에주력 가전제품 생산공장까지도 해외로 이전키로 한 것은 국내 전자산업 구조가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끄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가전업체들이 주력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것은 일부제품의 국내 수요가 한계에 도달한데다 현지화의 일환으로 해외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려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려는 전자업체들의 장기적인 영업전략에따른 조치라고 한다. 또한 임금이 싸고 무역마찰을 해소할 수 있는 이점도고려됐을 것이다.
가전업체들의 해외진출을 통한 현지화·세계화는 그동안 바람직한 것으로받아들여졌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임금이 크게 올랐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블록화로 인해 무역장벽이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일본도 마쓰시타를 비롯한 주요 전자업체들이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동남아에 약 30년전부터 진출해 현재 일부지역은 「일본 가전왕국」을 건설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분명 현지화·세계화는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한가지 우려되는 점은 바로산업의 공동화이다. 산업의 공동화는 自國의 화폐가 강세를 보일 때 흔히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령 지난 80년대 중반에 발생한 일본의 엔高는 일본의 제조업을 파괴시켜 결국 미국과 같이 제조업의 쇠퇴를 초래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공동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86년말에 「엔高 디플레이션」을 극복하자마자 일본 경제는 크게 약진을 했다.
엔高가 공동화를 초래하기는커녕 일본 경제에 유례없는 호경기를 가져다주어공동화론을 잠재웠다.
일본에서 공동화가 나타나지 않은 것에는 뚜렷한 원인이 있다. 종신고용,연공서열식 임금제도 등 독특한 일본형 경영시스템 때문이다. 그것은 회사가반도시 존속해야 의미를 갖는다. 일본에서 회사는 노동자가 모든 생활과 자신의 인격을 맡긴 조직이다. 그러므로 일본형 경영에서는 도산이 가장 곤란한 문제이고 도산이 증가하면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 따라서 회사가몰락하지 않도록 勞使 공동으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다. 회사내에서뿐 아니라 하청기업 등 기업 그룹 전체가 합리화를 추진한다. 엔高때마다 기업의합리화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종업원을 해고할 수 없는 일본 기업은 어쨌든더욱 열심히 일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영형태는 미국과 비슷하지만 일본과는 상당히 다르다. 미국기업은 환율이 높아져 수출이 잘 되지 않으면 채산성 없는 사업은 그만둔다.
이익이 안나는 일을 계속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바로 미국의 가전업계가 그 좋은 예이다.
미국은 가격이 낮고 품질이 좋은 일본산 TV에 밀려 TV·VCR 등 대부분 가전제품의 생산을 포기해야 했다.
이번 가전업체들이 단행하는 핵심공장의 해외이전이 국내 가전산업의 공동화를 단기간에 초래할 것인지 현재로서는 섣불리 단언하기 어렵다. 이전대상이 오디오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컬러TV는 아직 그 비율이 그리 높은 것같지는 않다. 그러나 당장 차세대 제품이나 시장이 얼른 떠오르지 않고 또정보산업에 비해 투자 효율성이 낮다고 해서 전면적으로 가전기지를 해외로옮긴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가전 3社에 매달리고 있는 수많은 하청기업과 부품업체들의 생존권여부를 떠나 국내 가전산업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어 국내 산업구조에 일대 변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가전업체들의 이번 주력공장 해외이전이 컬러TV·VCR 이후의최대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DVD 등 차세대 제품 개발이나 생산에지장을 초래해서는 안된다. 수많은 가전제품 가운데서도 미래시장을 주도할전략품목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가전산업을 일본에게 내주고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를 비롯한 정보산업이 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 가전산업을 다른 나라에 넘겨주고 버텨나가기는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