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세상의 끝, 서킷 보드의 중심 (33)

그때 두번째 야쿠자가 뒤에 나타난다. 그 역시 원숭이의 손가락과 이빨을보자 기겁을 한다. 막대기를 무력하게 들고만 있을 뿐, 동료의 얼굴을 내치려고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땅에 떨어진 낙엽을 저만치 날리는 바람처럼 남자의 생명의 에센스가 갑자기 솟아오른다. 피로 물든 입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남자는 계단 아래로 떨어진다.

퍽 하고 땅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갈회색의 홀로그램이 잠시 남자의 몸 위를 맴돈다. 혼란스러운 것이다. 그의 주인이 죽어가고 있다. 몸을 돌려 고비를 바라보는 눈에 비참한 공포가서려 있다.

고비는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안다. 그는 가슴 깊숙히 기를 내려보낸다. 자, 서둘러라! 상자를 여는 숫자가 뭐였더라? 클릭하면서 볼트가 열린다.

컴컴한 어둠 속에 의식이 움직인다.

TV를 보고 있었나 보다. 뉴저지에서 사는 원시인들에 대한 NHK 다큐멘터리이다. 이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힘없는 노인의 들릴락말락하는 말소리이다.

『사토, 자넨가? 때가 되었는가? 세상이 바뀌었느냐고? 내 새로운 몸이 준비되었는가? 나는 누가 되는 건가?』

그러더니 잠시 후,

『당신은 대체 누구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바야시 류타로 씨?』

『예.』

『죄송하지만 이제 다른 데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아무 소리도 없다.

잠시 후 노인이 묻는다.

『내 새로운 육체로요?』

『네. 그러니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남자가 될 겁니까, 여자가 될 겁니까?』

『둘 다 아닙니다.』

침묵…….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까?』

『아니오.』

『이것이 마지막입니까?』

『네.』

한숨이 흘러나온다.

『나는 그래도 바랐는데…….』

『새로운 삶에 행운이 함께하기를…….』

고비와 야즈는 원숭이의 홀로그램이 건물의 에어콘 설비 속으로 들어가서는 이를 맞부딪치며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고비가 절을 한다.

『류타로 씨, 안녕.』

그리고는 덧붙인다.

『그가 어디에 있던 찾아내어 깨달음에 이르도록 도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