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의 "통신 기술표준"간섭 이래도 되나

국내 통신시장 개방압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미국의 요구가 최근들어 그 정도를 지나치는 데 대해 우리는 심한 우려를 갖고 있다.

그동안 정부기관 및 정부투자기관 조달장비에 이어 민간기업의 조달장비분야에 대해서까지 압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보도는 미국의 간섭에 가까운 개방압력의 끝은 과연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

우리 사회는 굳이 미국의 압력이 아니더라도 내부적 여건에 의해 시장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의 기업과 미국의기업간 상호 호혜적인 개방을 원하는 것이지 어느 일방에 의한 지배적 개방은 결코 바라지 않는다.

현재 한국내에서는 많은 미국계 기업들이 다방면에서 기술우위를 내세우며공격적인 영업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가 경제개발을 시작하던 초기에는 미국이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던 기술이 우리에게 요긴했었고 또한 그같은앞선 기술이 우리의 기술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정부 및 기업들은 자국 기업이 갖고 있는 기술의 개방을여러면에서 가로막고 있다. 또한 우리의 시장이 개방되어 가는 속도에 비례해 거꾸로 미국시장은 우리에게 점차 배타적인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일례로 우리는 아직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처럼 해커들의 천국이 아니다. 다만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침투하는 해커들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취하는 데 있어 기술적 부족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미국은 여러 기술선진국들 가운데에서도 앞장서서 우리와 같이 보안기술을 필요로 하는 국가에 대한기술제공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국기업에 대해 끊임없이 제기되는 특허분쟁과 덤핑시비는자국 법체계에 낯선 외국기업들을 주눅들게 함으로써 시장진입을 봉쇄하는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태도는 미국을 우방으로 믿어왔던 우리 국민들 사이에 反美감정을 키우게 했으며 우리의 자연스러운 개방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미 舊韓末의 쇄국정책이 초래한 비극을 경험했고 또한 역사적으로 대외적 교류가 끊긴 사회의 맥없이 허물어짐을 교훈으로 배웠다. 따라서우리는 개방의 필요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다만 우리의 힘이 감당할 수있는 점진적인 개방을 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 韓·美 통신협의에서 미국측이 내세운 주장은 우리 국민들을불쾌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장비조달시장에 미국산 장비의 진입을 한국정부가 가로막은 바는 없었다.

다만 한국정부는 우리 사회의 통일성있는 통신서비스를 위해 단일 기술표준을 제시했을 뿐이며 미국의 기업들이 시장참여를 원한다면 그 표준에 따르면그뿐이다.

그같은 기술표준을 두고 이래라 저래라 한다면 우리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국민이라도 미국의 태도가 지나치나고 여길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보기에 미국 기업들은 그간 미국정부가 밀어붙이면 한국정부는 그 요구를 수용했으므로 우리의 기술표준을 충분히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심을 갖고 있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채택을 거듭 천명해왔고 또 그같은 약속을 지켰다.

그에 대해 미국의 기업들은 적절한 기술적 대응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미국의 기업들을 위해 우리 사회의 통신서비스 방식이 좌지우지될 수는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 국가의 역사가 일천하고 다양한 인종, 다양한 민족적 배경으로 얽힌 국민의 국가인 미국은 한 국민의 정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은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빈번한 외세의 침략에 직면하기도했으나 상호 호혜적 교류가 불가능한 그같은 침략을 언제나 민족적 자존심으로 물리쳐 왔다.

그같은 한국의 역사를 이해한다면 미국은 결코 이번 韓·美 통신협의에서와 같은 부당하고 무례한 주장을 거듭할 수 없으리라 믿는다. 미국은 자국의이익을 위해서도 더 이상 한국민의 反美 감정을 자극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