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B초등학교에서 컴퓨터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오성혜(가명)선생은컴퓨터 교육시간만 되면 곤혹스럽다. 사설학원에서 몇 달이나 PC교육을 받았고 교육청 산하기관에서 실시하는 연수교육까지 이수했지만 도무지 수업에자신감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학교 컴퓨터실에 설치된 PC가 모두 10년 전 유행했던 XT기종이어서 학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어 50분 수업을 거의 무료하게 보내고 있다. 가정에서 고성능 펜티엄PC를 사용해 온 어린 학생들의 수업집중력이 떨어지고 「컴도사」라 불리는 몇몇 학생들로부터 어려운 질문을받아 진땀을 빼는 경우도 한두번이 아니다. 질문에 잘못 답변해 『선생님,그게 아닌데요』라는 학생들의 항변을 받는 경우도 다반사다.
오 선생은 참다 못해 저녁시간을 쪼개 컴퓨터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녀는인터네트 등 최신 컴퓨터 이용법을 배워 자신있게 강의하려고 해도 학교에실습용 컴퓨터가 XT급이라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러한 학교 컴퓨터교육 실정은 비단 초등학교의 문제만은 아니다. 중·고등학교의 컴퓨터 교육도 다소 차이는 있지만 상황은 거의 비슷하다. 물론 어릴 때부터 컴퓨터 공부를 해온 학생들의 기술적인 질문에 진땀을 빼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컴퓨터교육 담당선생이 학생들의 컴퓨터활용 수준에맞춰 자발적으로 컴퓨터 활용에 대한 경험을 쌓아 재미있게 강의를 하더라도정작 중요한 실습기자재가 없어 실습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학교 컴퓨터교육의 현실이다. 이쯤되면 교사들이 컴퓨터 과목을 기피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컴퓨터 교육이 제도교육내에 자리잡은 지 꼭 8년이 됐다.
정부는 정보화 교육에 관심을 갖고 엄청난 재원과 인력·시설을 투자해 전국의 초중고교에 대부분 PC를 보급하는 등 적지않은 성과를 올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정보화 정책은 하드웨어 보급만에 치중, 정작 중요한 「컴퓨터 전문교사」양성을 소홀히 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몇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이같은 문제점이 쉽게 드러난다. 먼저 교사들이상식수준에 불과할 정도의 극히 초보적인 컴퓨터 교육만을 이수받고 있다는점이다.
『컴퓨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유자재로 사용하려면 최소한 2∼3년쯤은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상식에 속합니다. 그러나 컴퓨터 교사를양성하는 교육기관에서는 이런 상식이 안 통합니다. 중고교 교사를 양성하는사범대학의 경우 몇 년 전부터 컴퓨터교육학과가 신설돼 사정이 좀 낳은 편이지만 전과목을 교사 혼자 가르치는 초등학교의 경우 문제점이 한두가지가아닙니다.』
서울 B초등학교 金모선생의 지적이다. 컴퓨터 교사의 양성이 주먹구식으로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교사양성기관인 교육대학에서 「컴퓨터」 과목을 커리큘럼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그 내용이 너무 기초적이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초등학생의 경우에도 전산교육만큼은 전담교사가 있어 깊이있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다.
한마디로 미래의 교사를 양성하는 제도교육기관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단정지을 수 있다.
그렇다고 현재 교단에서 가르치고 있는 기성교사에 대한 재교육 프로그램준비 여부는 어떠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컴퓨터 교사 양성을 위한 정부의 재교육 프로그램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현재 공식적으로 교사 재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 곳은 서울특별시과학교육원이 유일한 곳. 이곳에서는 매년 60∼1백20시간씩 교사를 대상으로한 컴퓨터 교육연수를 실시해 「컴맹교사」들을 컴퓨터 공포증에서 해방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서울시 과학교육원은 89년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매년 1∼2천명씩 모두 1만명 이상의 교사를 교육시켰다. 올해에도 약 2천명의 교사가 컴퓨터 연수를받을 계획이다.
교육과정도 지난해까지 3개 단계로 구성됐던 것을 올해부터는 프로그래밍과정·문서작성과정·자료처리과정·멀티미디어과정·저작도구과정·멀티미디어 저작도구과정·상고EDPS과정 등 7개 과정으로 세분, 전문화시켰다.
그러나 과학교육원 역시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교육시설·교수인원 때문에심도깊은 전문교육을 실시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상태다.
그렇다면 컴퓨터 전문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묘안은 없는가.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에 따라 전문교사 양성은 쉬울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학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거나 강제규정을 통해 교사연수의무 등을 추가하는 등 전문교사를 양산할 수 있는 기틀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학교육원 최정재 교사는 『최소한 매년 30시간 이상 최신 컴퓨터강좌를수강해야 하는 「교사의무학점제」를 도입하는 방안과 기존 교사를 대상으로2백60∼2백80시간 정도의 교육을 이수한 경우 「컴퓨터 부전공」을 인정, 자격증을 부여하는 방안 등 구체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교사의무학점제는 다소 강제성을 띠는 것이지만 적어도 교사들이 3개월마다 급속히 바뀌는 첨단 컴퓨터 정보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교육 관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컴퓨터가 생활필수품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점을 감안해 컴퓨터와 영어회화 등 몇 개 과목에 대한 교사의무학점제를 실시하면서 대상을 전체교사로 확대·지정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밖에 중등학교처럼 초등학교도 컴퓨터교과를 별도의 과목으로 독립시켜학습시키는 방안도 교사 자질향상 및 전문교사 양성에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란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기존 교사들을 재교육시키는 위해 과학교육원이나 유관기관을 대폭 확대하던지 아예 전담교육기관을 신설해 체계적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한국의 컴퓨터 교사양성교육은 「학생보다 모르는 교사」를 양산해 냈다. 2000년대 미래 정보시대에 한국의 국가경쟁력은새싹들에게 숨가쁘게 질주하는 컴퓨터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시킬수 있는 컴퓨터 교사의 능력과 수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컴퓨터 전문교사양성이 시급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남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