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세상의 끝, 서킷보드의 중심 (45)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지금은 어렵겠습니다. 다음 기회를 한번 보도록 하죠.」

「아이구, 그렇지. 또 다음 기회로군. 다음 기회라는 게 있긴 있을 것 같소? 정 생각이 그러시다면 할 수 없지. 즐거운 저녁 보내시구료, 아가씨.」

하며 유키에게 고개를 숙인다.

유키도 마주 고개를 숙인다.

팔짱을 낀 고비와 유키는 로비를 건너가고 채드위크는 마치 길잃은 양처럼슬픈 표정으로 그 뒤를 바라본다.

둘은 엘레베이터를 타고 곧장 방으로 올라간다.

유키의 젓가슴은 마치 스무살짜리 같다. 작은 버섯 같은 젓꼭지에 풍만하고 단단한 가슴이다. 미키모토 홀로그램을 빼지 않고 남겨놓아 진주 목걸이가 목에서 물결친다.

고비는 사랑이 끝난 바로 그 순간만큼은 뉴도쿄가 사라졌다 해도 상관하지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낭만적일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유키는 베개를 다시 고르게 해서 벤다. 그녀의 입술은 고비의 키스로 흠뻑젖은 채 열려 있다. 그녀가 미소를 짓는다.

「이럴 때 담배나 한 대 피우면 정말 좋을 텐데....」그녀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는 손가락으로 고비의 코를 슬쩍 건드린다.

「미안하오. 난 담배를 안 피워서...」

그녀의 다리에 뺨을 얹고 그녀의 향내를 맡으며 고비가 사과한다.

배꼽 아래에 나와 있는 달착지근한 땀을 고비는 천천히 핥는다.

「진짜 담배가 아니라,」

유키가 일어나 앉으며 말한다.

「머리 속에서 상상할 거라구요.」

그녀는 눈을 감고는 눈썹을 모으더니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몇 초 후, 다시 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뜨더니 그의 놀란 눈을 내려다본다.

「지금 끊는 중이거든요.」

그녀가 설명한다.

「그래요? 하루에 몇 번이나 그렇게 하오?」

「아홉 번이나 열 번이요? 별로 심한 편은 아니예요. 그렇죠?」「중요한 건 생각이오. 너무 심해진다 싶으면 니코틴 조각을 상상해 보도록 해요.」

호텔 방의 창문을 통해 뉴도쿄의 고층 건물과 눈부신 홀로 불빛이 보인다.

아래의 넓은 거리를 건너 시간의 옥팔찌 같은 황궁을 바라본다. 울창한 나무와 언덕이 신일본 황제의 거주지를 가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