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꾼 중 대장이 정문에 붙어 있는 쪽문을 두드리자마자 거의 동시에 문이 열리면서 내다보는 얼굴이 하나 나타난다. 끼익 하고 정문이 열리자 가마행렬은 키 큰 소나무와 삼나무 사이로 난 자갈길을 따라간다.
한 쌍의 해태상이 전통 일본식 집을 지키며 길 양쪽에 놓여 있다.
몇 명의 하인들이 손님을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가마가 땅에 닿자 먼저 유키가 나온다.
『프랭크 씨, 이제 나오셔도 돼요.』
그녀의 부름에 고비는 문을 열고 하인이 땅에 내려놓은 나막신을 신는다.
현관 쪽으로 걸음을 떼어놓자, 일렬로 서 있던 하인들이 동시에 절을 한다.
『박사님 재주에 대해 들으시면 제후께서도 흡족해하실 거예요.』유키가 그를 칭찬한다. 『속으로 굉장히 걱정했어요.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하셨어요?』
고비는 아직도 조금 정신이 혼란스럽다.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것이 느껴지고, 티베트의 종소리처럼 귓속에서 작은 종소리가 울리는 것이 들린다.
『꽃꽂이나 같은 거죠, 뭐. 난 꽃 대신 악몽을 이용한 것뿐이오. 그 사무라이가 그렇게 흉측스러운 괴물에는 반응할 것 같았죠.』
『그건 우리 단체 프로그램이에요. 국립 데이터뱅크에 있죠.』고비는 현관에서 나막신을 벗은 다음, 버선을 신은 채 집 안으로 들어선다.
『이 환경은 정말 연상력에 반응이 빠른 것 같소. 재현성(再現性)으로는물질적인 것 같지만, 진짜 형태는 더 정신적이어서.』
『정신적, 그렇습니다. 정말 정확한 평가시로군요. 마침내 이렇게 뵙게 되다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고비는 어디서부터 말소리가 들려오는지를 보려고 고개를 들어 둘러본다.
그와 유키는 횃불이 켜져 있는 중앙 홀에 막 들어가고 있었다.
백발에 안경을 낀 점잖게 생긴 노인이 앞으로 다가선다. 짙은 색깔의 기모노에 누빈 조끼를 입고 있다.
『내가 하라다 카즈오입니다.』
소개가 필요없는 노인이 스스로를 소개한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 명성이 조금도 지나침이 없군요. 아, 유키,』유키에게로 몸을 돌린다.
『이렇게 안전하게 모셔오다니 정말 수고했소.』
유키는 분을 바른 흰 목을 드러내며 자동으로 접혀지는 부채처럼 우아하게절을 한다.
하라다 카즈오는 고비에게 손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