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양반, 이제서야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은데요?』
빅터가 너털웃음을 웃는다. 그 웃음에는 부드러운 느낌이 곁들여 있다.
『대단하죠?』 하며 살짝 고비의 어깨를 친다.
『자, 당신은 어느 쪽이오?』
고비가 똑바로 몸을 일으켜 앉으며 묻는다.
『그런데 지금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요?』
채드위크는 고층건물의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간다. 몇 층을 내려가더니 엘리베이터 옆의 주차공간에 차를 댄다.
『피난처요. 지금쯤은 댁을 찾고 있을 것 아니오? 고바야시 알고리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뭣 때문에 그 난리를 쳤겠소? 놈들은 그걸 원할 거요. 하지만 우리가 보호해주리다. 그렇지, 빅터?』
채드위크가 슬쩍 윙크를 한다.
『자, 슬슬 움직여 봅시다.』
고비를 위해 뒷문을 열어준다.
『시간이 많이 없는 것 알죠?』
『지금 무엇을 할 계획인지부터 먼저 얘기해 주어야겠소.』
고비가 버티고 서서 말한다. 갑자기 옆구리에 뭐가 퍽 하고 들어온다.
『어른 말씀 안 들었나? 가자니까.』 카를로스가 명한다. 그리고는 고비옆으로 달라붙어 말한다.
『하나만 말해두지. 난 사이보그도 해치워 봤고 인간도 해치워 봤지만, 재밌는 건 뭐니뭐니 해도 꿈틀거리는 인간이더라구.』
으리으리한 재벌사 건물에 비하면 꽤 하찮은 건물이다. 지저분한 바닥과벽지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빈 사무실이 복도를 따라 나 있다. 그들은 45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간다.
『자, 저쪽입니다.』
채드위크가 고비에게 말한다.
할로겐 불빛이 머리 위에서 비치고 있다. 닫힌 문 틈으로 라면 끓이는 냄새가 새어나온다. 문 하나가 살짝 열리더니 얼굴이 삐져나왔다 금방 문 뒤로감춰진다.
『못 믿겠지만 이 건물 역시 세기 초만 하더라도 굉장한 건물이었다오.』채드위크가 신나서 떠든다.
『지난번 거품경제가 꺼지고 나서 시세가 떨어지긴 했지만 임대료도 싸고우리가 필요한 건 다 있으니 그런대로 쓸 만하죠. 다 왔소. 여기요.』 하고는 「피카디리 주변장치사, 잡상인 출입금지」라고 써진 문 앞에 선다.
채드위크는 문을 똑똑 두드리고는 귀를 기울인다. 아무 소리도 없다. 그는다시 문을 두드린다. 잠시후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살짝 열린 문 틈으로 사람들을 살피는 눈이 나타난다. 곧 활짝 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