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삐삐신화" 이후의 과제

지난달 접수 마감된 통신사업권 신청회사는 대소 53개 법인이었다. 평균적으로 2 대 1의 비율이지만,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한 기업수는 그린텔의 1만4천2백95개사를 필두로 우리나라의 웬만한 회사는 모두 참여하는 방대한 규모였다.

정보통신을 제2의 주력사업으로 내걸겠다고 선언하는 회사가 늘고 있는 것과 98년도로 예정된 대외개방에 대비해서 시장수요를 포화시키겠다는 정부의지가 맞물린 형국이어서 과히 단군 이래 최대의 잔치가 벌어질 모양이다.

어쨌거나 이를 계기로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인재들과 견실한 자본을 대거유치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통신사업은 공기업에 의한 외로운(?) 노력으로 이만큼 성장한 것이 사실이고, 그나마 통신사업 자체 수익의 재투자만으로도 80년대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초부터 몰아닥친 개방환경의 변화를 수용하는 데는 어딘가 허전해 보이는 구석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메우기라도 하듯 기다렸다는 듯이 사업자 신청이 쏟아진 것이다. 이같은 신청러시는 기존 이동전화나 무선호출사업의 성공사례에서 고무된 것 같다. 특히 무선호출의 성공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성공실례로서 정보통신분야 진출을 열망하는 회사들에게는 좋은 예시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과연 그 성공의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우선 꼽을 수 있는 요인은 경쟁구도 아래서 민간인 사업자들이 벌인 특유의 역동적인 판촉활동이었다. 지금까지 공기업에서 벌인 활동과는 형태부터다른, 인상적인 것이었다. 여기에다 완비된 기간전화망을 이용해 때마침 불어닥친 극심한 교통체증의 와중에서 이동성향을 좇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는 시운을 만난 것이다. 이른바 天時와 地理의 교묘한 일치라고 생각되지만 과연 이 하나로 다 설명되는 것일까.

무선호출은 일방향과 단순 메시지 전달에 그친다는 점에서 가장 원시적인시스템에 속한다. 이러한 단순성이 오히려 일반에게는 먹혀 들어가는 요소라는 점이 증명된 셈인데,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호출부가서비스로 음성사서함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페이저의 단순성을 살리면서 언제라도 열어 볼 수 있는 음성사서함이 조화를 이루는 형국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업자와 이용자가 완벽하게 어울린 한편의 人和드라마를 연상케한다. 마침내 세계 제1의 페이저 대국(보급률에서는 3위이지만 싱가포르와홍콩은 도시국가다) 신화를 창조했으며, 천시와 지리 그리고 인화가 이루어낸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번 사업자 신청에 몰리는 인기를 살펴보면서 그리고 페이저의 신화를 그려보면서 생각나는 일은 모든 사업자들이 다 신화를 창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열화 같은 정보통신의 사업열기를 1회용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이동통신이나 페이저를 준비했던 기업 중에는 사업자 선정이무산되자 습득한 기술이나 보유인력을 해체하는 경우도 있었던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열기가 식지 않도록 제2의 메뉴를 만드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이윤동기를 제일로 치는 기업인들에게 장기 안목만을 강조할 수는 없지만적어도 차려논 밥상에 숟가락만 들 것이 아니라 밥을 짓거나 상을 차리는 수고는 거들어야 한다. 무선호출의 경우처럼 창의에 따라 얼마든지 성공할 가능성이 있음을 직시하고 先투자를 계속하는 것이 그것이다. 대충 보아도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무선시내가입전화·유선공중전화·범용개인통신(UPT)·위성이동서비스 등이 있으며, 그밖에도 초고속망을 이용한 수많은 서비스가 또다른 주인을 기다리고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남이 방심할 때가 나의기회이며, 때를 놓치면 사활이 교차하는 바둑의 형국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것이다.

<진용옥 경희대 전자전파계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