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미.일.유럽, 반도체 협정 둘러싸고 대립

미국과 일본 및 유럽이 미·일 반도체협정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반도체 무관세화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정보기술(IT)산업 자유무역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리언 브리튼 무역위원은 최근 정보기술산업 무역자유화를 위한노력이 미국의 반도체정책으로 인해 난관에 봉착했다면서 『유럽업체들의 다른 나라, 특히 일본시장에 대한 공정한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한 유럽은 관세철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측의 이같은 태도는 오는 7월말 끝나는 미·일 반도체협정의 후속조처협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미국은 일본시장에서 외산 반도체 판매비율을 20% 이상으로 한다는 내용의이 협정의 갱신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이를 관리무역 형태로 보고 더이상 연장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런데 최근 유럽이 끼어들면서 상황은 매우 복잡해졌다.

유럽은 기존 미·일 반도체협정은 미국의 대일 무역보복 위협이라는 상황에서 체결된 것으로 일본이 사실상 미국업체를 유럽업체보다 우대하지 않을수 없게 하는 것으로 국가차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며 새로운 협상과정에는유럽도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미·일 협정이 체결된 91년 이후 미국업체의 대일 시장점유율은 2배가 늘어 19%에 달하고 있으나 유럽업체의 일본 시장점유율은 1.5%에 그치고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이같은 현실이 유럽업체의 마케팅능력 부재에 기인하는 것이지 차별화의 결과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최근 한국과 대만을 포함한 세계 주요 반도체업체간 협력증대를 위한 민간중심의 세계 반도체 협의회(WSC)를 제안했다. 다자간민간협의를 통해 반도체분야의 기술협력은 물론 표준제정·환경·안전·저작권 등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같은 제안은 유럽업체들의 일본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미·일 반도체협정에 관여하려는 유럽의 행보에 제동을 걸면서 미국으로부터의 무역압력도 피해가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일부에선 보고 있다.

미국은 그러나 이런 제안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측 제안을 협상테이블에 올리는 것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일본이미·일 반도체협정을 갱신하려는 미국측 요구를 무력화시키려는 「불순한」의도를 깔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은 또 유럽이 반도체 관세를 낮춰가지 않는 한 일본과의 어떤 협상에도 유럽이 참여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일부 미국업체들은 유럽의 미·일 협상 관여움직임이 고율의 관세정책 유지를 위한 핑계거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는 불신을 갖고 있다. 실제로유럽은 현재 선진지역중 최고의 관세율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반도체시장 패권을 노리는 3자의 입장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정보산업의 무역자유화는 현재로선 요원하다고 대다수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오세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