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관 공조로 통상압력 대처해야

선진국들이 통상문제에 관한 한 양날의 칼을 휘둘러 우리나라 전자산업을위협하고 있다.

미국·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은 TV의 V(Violence)칩 채용 의무화, 우회덤핑 및 환경규격 강화, 외국 투자업체들에 대한 조세강화 등 새로운 규제수단을 활용함으로써 자국 전자산업에 대한 보호장벽을 높이는 반면 외국에 대해서는 주요 제품의 무관세화 요구 등을 통한 시장개방 확대 압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보도다. 특히 선진국들은 자국산업 보호장치를 이중·삼중으로 만들어 우리 업체들의 대응력을 교묘하게 피해나가고 있어 정부와 업계의긴밀한 공조체제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V칩이 TV수출의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에 이어 호주와 영국은어린이들의 폭력물의 시청을 막기 위해 자국에서 유통되는 TV에 V칩 채용을의무화하는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우리에겐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 2월에 제정된 V칩 법이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97년 하반기에는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호주 정부도 V칩의 채용을 의무화하기 위해입법화를 서두르고 있으며 영국도 이와 유사한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V칩법 제정은 기존의 반덤핑규제를 넘어서 점차 다양한 방법으로 대외 무역장벽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의 한 단면으로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국내업체가 앞으로 일부 선진국 시장에 TV를 수출할 경우 V칩채용에 따른 제조원가 상승이 불가피하나 가격경쟁이 심해 원가부담을 곧바로 가격에 반영시키기 어렵다는 게 국내업계의 고민이다.

연간 2백50만여대로 추정되는 對美 TV수출이 V칩법 시행으로 차질을 빚는다면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국내 TV업체들도 V칩의 조달을 외국 전문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차원을 넘어 V칩기술을 자체 개발해 조달하는 장기적인 대응을 통해 앞으로예상되는 원가 부담요인을 줄여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우회덤핑 규제 강화도 우리에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멕시코에서 생산한 한국 컬러TV에 대해 우회덤핑 조사를 벌이면서도 한국측의 컬러TV 반덤핑 규제 철회 요구에 대해서는 마이동풍이다.

EU도 덤핑규제는 물론 역내 투자기업에 대한 현지 생산부품 채용 비율을계속 확대해 우회 덤핑규제도 크게 강화하고 있다. EU 안전규격(CE마크)도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등장,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전자업체들의EU수출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

미국은 한국 현지법인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이용하고 있어 양국 정부간 문제로 비화될 조짐이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자국산업 보호장벽은 높게 치면서도 타국에 대한 개방장벽은 낮추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미국은 컴퓨터·반도체 등 정보기기에대한 무관세화를 추진,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우리나라 전자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우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기구(APEC) 역내 국가들이 내년부터 정보기기에 대한 관세를 내리고 오는 2000년까지 무관세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문제의 경우 보호와 개방에 대해 이중 잣대를사용하는 양면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 비해 핵심 기술력과 산업기반이 뒤지는 우리 전자산업에는 선진국들의 작위적인 통상전략이 커다란 장애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세계화 및현지화를 추구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전략도 이같은 방해공작에 시달리기 일쑤다.

따라서 통상문제는 희망사항에 불과한 불확실한 사후수습 전략보다는 일이벌어지기 전에 정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현실성있는 대안을 사전적으로 강구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범정부차원에서 업계와 공동으로 「통상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