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의식의 교각 (54)

고비는 몸을 숙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고바야시 쪽이 그런 게 아니었소. 물론 그들도 당연히 사토리를 매입하려고 했겠지만. 이 모든 게 다 당신이 한 짓이었소. 당신은 고바야시그룹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었지. 세계 경제계의 새로운 황제. 야심이 보통이 아니더군.』

와다는 계속 바라볼 뿐이다.

『다음 수요일에 사토리 이사회가 열릴 예정이라면서요? 바로 그날 하라다는 사토리사와 고바야시그룹의 합병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겠죠.』

와다가 갑자기 사근사근해진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박사님?』

고비가 잠시 그를 바라본다.

『참회해야 합니다. 엄청난 참회와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값을 부르시죠.』

고비는 종이를 한 장 꺼내더니 와다에게 건네준다. 와다는 한동안 그 종이쪽지를 들여다본다.

『거기 써 있는 그대로요. 이번 투기에서 한 12억 뉴엔을 벌었더군요. 이건 당신의 관대한 지원이 도움줄 수 있는 국제기구들 명단이오. 대충 비슷한액수가 될 거요. 다른 페이지에는 「가상현실의 희생자들」이라는, 새로 생긴 기구가 나와 있소. 이번 사토리 사건 희생자들의 모든 피해를 보상할 기구죠. 우선 동시베리아에 있는 척치마을이라는 곳부터 시작해야 할 겁니다.



와다는 잠시 지금 들은 말을 소화하는 눈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소. 그 밖에 또 다른 것은요?』

그는 방 건너를 바라보고 있는 고비의 눈길을 따라간다.

『아!』

와다는 일어서더니 신경 네츠케 조각이 전시되어 있는 선반 쪽으로 걸음을옮긴다. 밤송이를 쥐고 있는 원숭이 조각을 집어들어 손으로 어루만진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최고 경영자가 모든 책임을 지는 명예로운 관습이 있습니다. 물론 옛 봉건시대에는 할복의식도 있었죠.』

『나도 들어본 적이 있소.』

고비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건 지금은 비었지만 내일이면 슬픈 의식(意識)으로 가득 차게 될 겁니다.』

네츠케 위로 손을 얹는다.

고비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문앞에서 멈춰 몸을숙인다.

『안녕히 계시오. 참선으로 좋은 결과를 얻으시기 바라오.』고비가 나가는 것을 보며 와다는 손을 양옆으로 떨군 채 굳은 표정으로 서있다.

『안녕히 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