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키르히그룹, 유럽 디지털방송 새강자

유럽 방송시장에서 독일의 키르히그룹이 급부상하고 있다.

처음 키르히그룹이 독일 최초로 이달 말부터 디지털TV방송을 개시하겠다고선언할 때만 해도 그 실현성에 의문을 제기하던 업계 관계자들은 이들이 다시 디지털 방송을 위해 영국의 B스카이B와 협력한다고 발표하자 이제는 긍정적인 시선을 넘어 이들의 방송에 대한 기대감마저 나타내고 있다.

키르히그룹은 지난 56년 설립된 이래 최근까지도 구체적인 기업규모를 밝히지 않을 정도로 베일에 감춰져 있는 업체. 그러나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스위스 등 유럽 전역에 걸쳐 신문.잡지 등 인쇄매체에서부터 다수의 TV.라디오 방송사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방송시장을 베텔스만과양분하고 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회사 설립자인 레오 키르히가 가장 최근에 가진 인터뷰가 7년전일 정도로 그동안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왔다.

그러던 키르히그룹이 은자의 모습을 과감히 탈피, 호주의 언론재벌 루퍼트머독 소유의 B스카이B와 제휴를 맺는다고 발표했다. 방송사인 DF1을 통해 B스카이B와 함께 디지털TV방송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키르히그룹은 이전에도 경쟁업체인 베텔스만 외에 프랑스의 카날 플뤼스(+)와 유료TV채널인 프리미어에 공동 투자해오고 있었다. 지난 89년 출범한프리미어는 1백만명 정도의 가입자를 갖고 있지만 어떤 획기적인 전기가 없는한 현상유지도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키르히그룹은 평소 이 채널이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보다 공격적인 마케팅전략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강조해 왔다.

그러나 3대의 마차가 제각각으로 달리고 있는 프리미어채널이 일관성 있게사업을 추진하기란 쉽지 않았다. 따라서 키르히그룹이 그 대안으로 출범시킨것이 DF1인 셈이고, 여기에 B스카이B가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제휴에대해 경쟁업체들은 "유료TV(B스카이B)와 디지털TV(키르히그룹)의 절묘한 만남"이라고 표현해가며 경계하고 있다. 키르히그룹은 올해안에 3천만 마르크를 더 투자하는 등 현재 17개의 디지털 채널인 DF1의 채널을 향후 2백개까지늘릴 계획이라고 밝힌다.

또한 키르히그룹은 이 채널을 통해 보급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확보에도적극 나서 최근 미국의 영화사인 워너 브러더스.MCA 등과 영화 및 TV시리즈판권을 확보하기 위한 계약을 마무리했다.

키르히그룹의 이같은 속보는 경쟁업체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유럽 방송업계 관계자들마저 놀라게 하고 있다. 실제로 키르히그룹은 경쟁업체인 베텔스만에 비해 늦게 디지털TV방송시장에 참여했다. 그러나 본래 베텔스만 진영에속해 있던 B스카이B가 이를 탈퇴, 키르히그룹에 참여하겠다고 전격적으로선언하자 유럽업계는 거의 경악했다.

대륙진출을 노려 유럽 최대시장인 독일에서의 파트너선정에 신중을 기할수밖에 없었던 B스카이B의 키르히그룹 선택으로 세계 업계의 시선은 일제히이들에게로 몰렸다. 사실 키르히그룹과 B스카이B의 협력은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오던 일이었다. 키르히그룹으로서는 영국 방송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B스카이B의 노하우가 절실했다. 이에 따라 DF1의 주식을 절반 가까이 넘겨주는등 머독의 미디어제국 건설에 편승해 성장하려 한다는 비난을 감수해 가면서까지 B스카이B를 끌어들인 것이다. 또한 유럽대륙에 안착을 희망해온 B스카이B로서는 키르히그룹의 조건은 베텔스만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들의 초창기 사업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자체적으로도 올해안에 2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면 성공이라고 보고 있다. 이외에 양사는 앞으로도제휴를 위한 문호가 개방돼 있다고 강조한다.

키르히그룹에 있어 B스카이B와의 제휴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B스카이B가유럽을 거쳐 세계시장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유럽업계에서는 향후 디지털 멀티미디어시대의 패자로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타임워너.월트 디즈니.텔레커뮤니케이션스사(TCI).CNN, 호주의 뉴스사 등을 꼽고있다. 금세기안에 이들과 함께 키르히그룹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