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남북 우리글 정보 표준화방안

남북한간의 정부 차원의 교류가 꽁꽁 얼어붙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학술 단체인 국어정보학회는 중국의 연변에서 북한 및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3년에 결쳐 주기적인 학술 교류를 가졌고, 금년 8월 대회에서는 국어의 정보처리 방법에 대한 몇 가지 공동안을 만들었다. 물론 공적인 구속렬을 갖지않는 학술 대회의 합의 사항이지만 이분야에 이루어진 최초의 합의이므로 그의미는 매우 크다.

이번 합의에서 관심을 끄는 부분은 한글의 글자 배열 순서에 대한 합의화,컴퓨터 자판 배치에 대한 합의이다. 먼저 글자 배열 순서를 보면 북한이 `,,,,다음에 ``을 배치하는 북쪽 맞춤법을 양보하여 `,,,`으로 배열하기로 하였고, 남한은 `,,,,`를 각각 `,,,`로 부터 독립시켜 `` 다음에 배치하기로양보 하였다. 어느쪽이 올바른 배열 방법인가에 해하여 많은 이론의 여지가있지만, 지금까지 남과 북이 각기 달리 쓰던 우리 글자의 배열 순서를 서로한 발씩 양보하여 공동안을 만들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북한이 해방 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언어혁명의 성과를 일부 포기한 것은"컴퓨터 처리 부호계의 사용에 한정한다"는 단서가 있으나, 매우 획기적인변화의 징후가 아닌가 한다.

컴퓨터 자판 배치의 공동안은 인간공학적인 연구 성과를 많이 반영한 안으로 보인다. 자판의 성능 평가를 위한 요소는 좌우 손의 작업 부담률, 한 손으로 연속 하여 치는 연타의 발생빈도, 자판 위에서 양손이 움직이는 운지거리 등에 의해 결정된다. 공동안이 우리의 표준과 달라진 것이 17개 북한의표준과 달라진 것이 10개로 북한 규격을 많이 따랐다는 비판있다. 그러나 북한이 현재의 표준 자판을 제정한 것은 1993년으로 우리의 표준 자판인 KS C5715보다 무려 12년이나 뒤졌으므로, 오히려 그 동안 이루어진 많은 인간공학적인 연구 성과를 도입하였기 때문에 북한 쪽이 변화의 폭이 적었을 것으로보인다.

그러나 가장 합리적인 컴퓨터 자판이 반드시 표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영문 자판 표준의 성립 과정에서 볼 수 있다. 현재 표준으로 쓰고 있는 영문자판은 왼손 윗줄 순서대로 Qwerty 자판이라고 하는데 타자기의 대량 보급기의 초기 시장을 선점하였기 때뭉에 표준으로 고정된 것이다. 이보다 30년뒤에 미국의 드보락 교수가 인간공학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자판을 고안하였으나 기존 표준을 뒤엎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한의 개인용 컴퓨터의 누적보급 대수가 일 천만 대에 이르고 있고, 북한은 극히 일부의 전문가만이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는 현실을 볼 때, 이번 공동안이 남한의 기존 표준을대체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 이에 비해 북한의 경우에는 이번 공동안의 빠른정착이 예상되며 결과적으로 북한의 표준 개발에 남한 학자들이 공동 참여한것이 아닌가라는 회의적인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한글이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적 유산이지만 더 이상 우리나라 국제 공용 자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야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이제껏 남한과 북한 그리고 중국간에 이 분야에 대한 이렇다 할 합의가 없는불모의 상태에서 풍부한 내용을 담고 탄생한 이번 공동안의 돌출적 성격만큼이나 큰 생명력을 발휘하여 향후 이 분야의 표준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히 이번 공동안은 국제 표준화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 북한이나 중국에서 국제표준화기구(ISO)에 공식 의제로 제출할 가능성 또한 많다. 만일 이번공동안이 국제 표준으로 옷을 갈아입는다면 남한 시장 역시 이를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표준은 그 기술이 시장에서 받아 들여져 실용화되리라고 믿는 사람의 신념을 표현한 것"이라는 명쾌한 정의가 있다. 표준은 시장의 경쟁 기능에 의해 멸종될 뿐만아니라 표준 자체가 시장 변화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기도한다는 뜻이다. 국어의 정보 처리 방법에 대한 표준은 우리의 언어 생활 및산업 활동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매우 크므로 단순히 시장의 경쟁 기능에 맡길 수는 없다. 정부의 관련 부처와 학계 및 산업계가 힘을 합쳐 좀 더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표준화를 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 산업표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