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자력사업 이관 논쟁

원자력연구소의 사업이관을 둘러싼 논쟁이 타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27일 제2백45차 원자력위원회가 국무총리행정조정실이 마련한 원자력사업체 재조정방안을 의결하자 당사자인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이에 반발,실장 및 팀장급 1백16명이 집단으로 보직사퇴하는 등 심상치 않은 사태가 발생한 바 있으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원자력사업체 재조정 방안의 주요 내용은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수행하고 있는 원전설계사업, 방사성폐기물사업, 핵연료의 설계제조사업등 기업성이 있는 사업을 산업체로 이관하고 그 대신 원자력연구소는 원자력에 관한 연구개발사업만을 전담토록 하는 한편 연구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주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원자력연구소에서는 원자력과 관련된 사업은 실용화 연구와 연계시켜야 하고 기술과 인력의 분산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정부의 사업이관 방침에 승복할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원자력연구소가 수행하고 있는 원자로 계통설계와 핵연료 설계는 원전의 핵심기술로서 이를 한전의 자회사로 이관한다는 것은 사업자의 경제성만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로서 안전성 확보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이같은 주장에도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원자력사업을 여러 기관에서 부문별로 참여하는 것보다 한 기관에서 맡는 것이 더 능률적일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한 두개의 원전을 갖고 있던 지난 80년대 초의 경우에나 해당되는 것으로 최근엔 원자력사업을 둘러싼 우리의 주변환경이 너무나 크게 변했다는 점에서 이의 실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원자력사업의 규모가 훨씬 커졌으며 사업의 영역도 원자로의 설계와 제작,경수로용 핵연료와 중수로형 핵연료의 설계와 제작, 방사성 폐기물 처리 처분시설의 설계, 건설 등으로 확대됐고 이로 인해 업무량이나 소요인력이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원자력산업도 이제는 새로운 차원에서 도약해 나가야한다. 지금까지의 원자력산업이 국내에 원전을 설계, 건설하기 위한 기술습득 내지는 기술자립의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독자적인 기술개발로 국내원전뿐 아니라 대이북 경수로 사업을 수행해야 하고 해외 원전시장에도 진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연구와 사업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연구분야와 대상과제에 따라 연구개발 기능과 사업기능은 구분되어야 하며 기술을 개발하는과학기술자와 그 기술을 응용하여 산업에 적용시키는 설계 내지 엔지니어링을 담당하는 기술자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따라서 원전사업은 기업적인 차원에서는 전문기능별로 분업화하여 전문화를 유도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이들 기능을 종합하고 조정하여 총체적인국제경쟁력을 높여 나가도록 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원자력사업의 기능조정은 여기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현재과학기술처와 통상산업부로 이원화 되어 있는 원자력 행정체제도 어느 한 기관으로 통합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사실 이번 원자력사업의 연구개발기능과 사업기능에 대한 논란의 불씨는정부가 그동안 강력히 추진해온 연구소별 연구과제 중심운영제도(PBS)의 시행에서 연유된 바 없지 않다고 본다.

본연의 순수연구에 전념해야 할 연구소의 분위기를 적자생존의 원측에 입각, 경제성있는 사업을 해야 만 생존할 수 있게 하는 PBS제도를 연구분야나과제별 성격에 관계없이 계속 추진하는 한 이같은 연구개발기능과 사업기능에 대한 논란은 기타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도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

심사숙고한 정책결정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이의 시행에 문제가 있다면 무조건 밀어붙이기식보다는 시행방법상의 차선책을 모색해야 한다. 또 해당 연구기관에서도 대국적인 입장에서 진정으로 안전성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면문제해결 차원에서 접근하는 보다 성숙된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