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요즘 창의적인 기업인을 발굴, 육성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아시아 각국에 과감히 기술이전을 하면서 자국의 생산기지화하고 자국내에서는 기술개발과 유통에만 주력하려는 움직임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아시아 각국을 탭으로 삼고 자국의 생산시설 투자는 자제하는 양상이 최근들어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이같은 두갈래 움직임은 결국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되는 듯 보인다.
갈수록 빨라지는 기술개발 속도를 앞질러가면서 기술표준을 주도하고 나아가 세계의 두뇌를 차지하고자 하는 것으로 집약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미국이 세계의 신경망을 장악하고자 한다면 일본은 뇌를 장악함으로써 기선을 잡고자 한다는 구도가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일본의 구상은 기술개발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동시에 신기술 제품생산에는 대규모 투자가 요구되는 현재의 기술 양상에 따라 위험부담을 피해가면서 지속적인 신기술 개발과 유통력을 무기로 기술지배력을 키워가려는의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술 발전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첨단기술의 첨단 속성이 지속되는 기간은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따라서 대규모 투자의 위험도도 그만큼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설비의 투자규모는 갈수록 대형화가 요구되고 있다. 기술표준을 주도하지 못하는 기업의 대규모 투자는 그만큼 위험할 수밖에 없다.
이같은 일본 기술의 생산기지화가 가장 큰 위험으로 다가오는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 대만, 중국에 부쩍 기술공여를 확대하고 있는 일본에 있어 대만이 중소기업형 생산기지라면 한국과 중국은 대형투자가 요구되는 대량생산용기지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중국은 저임금 구조로 저가제품 대량생산에 따른 경쟁력을 갖는다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구조가 중국과 동일 제품으로 경쟁하기 어렵게 한다. 따라서 보다 고급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지 않고는 점차 세계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자체 기술개발에 아직 소극적인 것처럼 보인다. 최근 대기업들의 액정표시장치(LCD) 생산정책이 이를 보다 명확히 보여주는 듯싶다.
국내 최대의 반도체기업이 LCD 생산에서는 거의 조립가공 수준에서 못벗어나는가 하면 그와 경쟁하는 또 다른 기업은 아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전문으로 나선 것처럼 보인다. 이에 비해 최근 국내 기업에 STN 기술을 공여하기로 한 일본 NEC는 자본참여는 안하고 기술지배력만 유지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국내 기업들의 LCD정책은 최근 S기업의 시장예측 실패에서 드러나듯 세계시장 주도력을 행사할 형편에 이르지 못했다. 10.4인치 이후 시장을 둔 예측에서 11.4인치를 고집하던 이 기업은 국내 L기업을 하청공장화한 일본의 12.1인치 주도에 밀려 대세가 된 12.1인치 양산체제 구축에 뒤늦게 나서는 실정이다.
물론 이 기업도 현재 12.1인치를 생산하고는 있다. 그러나 아직 10.4인치용 원판을 사용함으로써 생산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가격경쟁력 약화로 신기술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회사가 올해 말쯤이면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한다는 데 벌써 내년말 경이면 14.1∼15.1인치 LCD를 생산 개시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요근래 첨단제품 생산시설은 투자했다 하면 통상 몇조, 몇십조 단위로 올라가는데 그에따른 투자비용 회수기간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따라서 권투시합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처럼 치고 빠지기를 적기에 적절히 구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됐다. 이제 신제품 시장은 대형투자가 요구되는 첨단시장일지라도 니치마켓 못지않은 기동성과 유연성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앞선 자체 기술개발로 먼저 시장을 이끌어내고 그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할때는 이미 다음 단계 기술을 선보이는 숨가쁜 전쟁이 이제 본격화되고 있는것이다.
이제까지는 「모방으로는 1등이 될 수 없다」는 구호만으로도 신선했다. 그러나 이제는 규모가 커진 국내기업들이 남의 기술을 도입해 생산설비에만대규모 투자를 하는 방식을 지속하다가는 앞선 기술공여자들 뒤치닥거리만하며 기업자산 까먹기에 딱 알맞는 단계에 이르렀다.
언제까지나 기업은 기술개발에 인색하고, 제도교육은 개개인의 창의력을억누르면서 우물안 개구리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 기업의 보다 과감한 기술개발 투자와 이를 밑받침할 정부의 소신있는 기초과학 지원, 단순 지배논리에서 벗어나 창의력을 북돋울 수 있도록 진실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 없이는 우리에게 모든 21세기 청사진이 결국 환상이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