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들어 전자업체들이 경기부진의 장기화에 대비, 수출확대, 사업다각화로 활로를 뚫는 한편 매출목표를 하향조정하고 신규투자를 축소하는 등 불황대비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대체로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춘 업체들은 국내 경기부진의 여파를 수출로 극복하기 위해 해외지점 및 해외공장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설비투자는 가능한 한 자제하려는 움직임이다. 정보통신부품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품목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하려는 행보도 전에 없이 빨라지고 있는 느낌이다.
불황의 여파는 특히 중소 범용부품업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자동차용 데크 메커니즘업체들이 범용제품의 국내생산을 잇따라 중단하고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고 있는가 하면 영세업체들이 주류를 이루는 마일러 콘덴서의 경우는 세트의 가격파괴로 인한 가격인하부담과 공장의 해외이전 등에 따른 수요감소를 견디지 못하고 본사 및 공장을 아예 동남아지역으로 이전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럴 능력마저도 없는 영세업체들은 아예 사업을 포기, 문을 닫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그런가 하면 중견, 중소 저항기 생산업체들은 칩저항기의 수요는 늘고 있으나 이를 생산할 투자비문제 등으로 일본, 대만 등지로부터 반제품 형태로 칩저항기를 수입, 가공해 공급하는 임가공 성격으로 변모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저항기시장이 칩저항기로 옮겨가고 있으나 수십억원대에 달하는 관련 설비투자비 조달능력이 부족한 중소업체의 부득이한 선택이기는 하겠지만 자칫 이로 인해 국내산업이 기술적으로 낙후되지나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남들이 엄두내지 못하는 과감한 불황타개책으로 성과를 거두는 업체도 적지 않다. 전문분업화를 통한 원가절감, 니치마켓 공략, 그리고 「군살빼기」가 아닌 거의 「단식」으로까지 비쳐질 정도의 비장한 「살아남기」를 추진하는 이들 중소업체의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는다.
대표적인 분업 형태의 생산체계를 갖추고 있는 인쇄회로기판(PCB)산업에 이어 최근에는 저항기업체들이 착막과 캐핑공정을 전문업체에 맡기는 식의 분업화를 통해 원가절감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분업화가 급진전되면서 특정공정만을 처리하는 전문업체의 입지도 확대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보다 가격경쟁력이 낫다고 평가되는 대만의 경우는 비용절감을 위해 웬만한 공정은 전문업체에 맡기는 것이 정착돼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같은 불황타개책은 타 업종에서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허리띠 졸라매기」 또한 중소업체들이 택할 수밖에 없는 수단의 하나다. 한 트랜스포머 전문업체는 대규모 감량을 통해 유지, 관리비를 대폭 줄이고도 변함없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 회사는 최근 중국공장을 전격 폐쇄하고 국내공장도 기존의 4분의 1 수준으로 축소 이전하면서 공장매각대금으로 은행 빚을 청산, 금융비용을 제거했다. 또한 15명이던 관리, 영업인력을 사장을 포함해 4명으로 대폭 줄이고 차량도 3분의 1로 줄이는 등 극단적인 군살빼기를 단행하면서 사장이 직접 생산현장에 참여하는 등 직급구분없는 적극적인 노력끝에 매출은 예전대로 유지하면서도 원가를 10% 정도 줄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처럼 악착스럽기까지 한 극약처방을 서슴지 않는 것은 현실적으로 대기업이나 중견업체에 비해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는 데다 실질적으로 돌아올 혜택도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소업체의 살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하며 이같은 바탕에서만이 정부나 모기업의 간헐적인 지원도 그나마 효과가 있을 것이다. 진정한 경쟁력은 불황을 지난 뒤에야 판가름난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