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6)

김지호 실장은 순간적으로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보고 있던 요람일기를 떠올렸다. 그 요람일기의 내용에도 통신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전기통신의 도입과정과 전기통신의 도입 이전에 국가 기간통신망으로 활용되던 봉수통신에 관한 내용이 설명되어 있었다.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봉수대에서 신호를 보내 원거리까지 신속하게 정보를 보낼 수 있는 통신방식인 봉수통신은 1885년 전기통신이 도입되기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기간통신망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정보의 내용을 연기나 횃불로 변환시키고 사전 약정에 따라 통신을 수행한 봉수통신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에도 나타나 난다. 기원후 48년 7월 27일에 수로왕이 그의 부하를 시켜 망산도 앞바다에 나가게 하여 붉은 빛의 돛을 달고 붉은 기를 휘날리는 배를 발견하면 봉화로써 통보하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은 봉수통신제도가 그 당시에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과, 봉수통신이 어떤 형태로든 국가의 기간통신망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다섯 개의 약정된 신호를 가지고 변방의 소식을 전했던 봉수통신은 매우 고도화된 통신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데, 높은 산의 정상에 설치하였던 봉수대의 위치가 오늘날의 마이크로 웨이브 중계소의 위치와 대부분 일치하고 있어 봉수통신을 현대 전기통신의 원천으로 보기도 한다. 봉수통신은 정보를 신속히 전달하는 데만 국한하여 사용하였던 것이 아니라 인근 주민들에게는 경보를 알림과 동시에 다른 진영의 군사들에게는 정보를 알려줌으로써 상황에 따른 대응을 준비하게 하였고, 평상시에는 정기적인 봉수신호를 올려 나라의 평온과 지방의 안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역할도 수행하였던 것이다.

김지호 실장은 비디오폰의 버튼을 눌렀다. 통신망 운용 본부장의 얼굴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본부장님, 자동 절체시스템 재시동에 실패했습니다.』

『김 실장, 뭐야? 재시동 실패했어?』

『예, 1호기, 2호기에 데이터를 재입력시켰지만 재시동 실패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죽은 회선 다 어떡해?』

『방송회선은 지금 수동절체 작업중입니다. TV회선은 회복되었고, 라디오회선 절체는 곧 끝납니다. 일반회선은 지금 자동 절체시스템 2호기에 수동으로 데이터를 입력시키고 있습니다.』

『일반회선은 몇 회선이나 죽어 있소?』

『광화문쪽 라인이 다 죽었습니다. 30만 회선 이상입니다. 사고원인은 광화문 부근 맨홀에서 발생한 화재가 케이블에 옮겨 붙은 모양입니다.』

『화재사고는 이미 보고받았소. 문제는 죽은 회선이잖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