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LG-IBM」이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국내 굴지의 가전 메이커인 LG가 세계적인 컴퓨터 메이커인 IBM과 손을 잡음으로써 두 회사 모두 취약점을 보완해 멀티미디어 시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IBM은 한국시장을 수성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LG는 세계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공격무기를 갖추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시장전략을 겨냥한 다목적 연합인 셈이다.
LG의 경우는 이밖에 제휴선인 일본 후지쯔 자체 전시장에서 반도체 등 부품 전시회를 열며 새로운 한일 협력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런 형태는 일본의 기업들도 원하는 바이며 국내 기업들 역시 바라고는 있으나 쉽게 성사시키지 못하는 일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가전왕국인 동시에 그들만의 독특한 배타적 유통구조를 가진 일본시장 진출의 첫 단계는 일본과의 협력생산을 위한 제휴가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현재 좋으나 싫으나 일본은 우리에게 있어 가장 긴밀한 경제협력 파트너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런 일본에 대해 아직도 우리는 너무 모른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일본을 너무 피상적으로만 바라볼 뿐 그들 내부를 깊숙이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우리의 세계화는 이처럼 가장 가깝고 긴밀한 관계에 있는 나라들을 보다 정확히 아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는 민간부문의 관심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정부는 세계화를 외치기만 할 뿐 정작 세계시장을 겨냥해 들고나는 국내외 기업을 통제하는 일에 더 관심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행태를 종종 보이곤 한다.
현 단계에서 정부가 할 일 가운데 최우선은 협력국들에 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선입관없이 수집, 분석해 제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현 정부 출범 초기에는 국가안전기획부조차 이런 일을 중점사업으로 삼을 듯이 했으나 이제와서 그같은 발언들은 단지 정치적 수사(修辭)였을 뿐임을 보여줘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어떻든 정부는 그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을 이런저런 명목붙여 통제하기보다 진출국에서 우리의 발언권을 강화시키는 기회로 삼아 진출기업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국익의 바탕을 넓혀나가야 할 것이다. 국내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나라와 보다 긴밀한 외교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제외교이며 세계무대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우리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일인 동시에 국내시장 또한 세계적 무대로 제공하는 일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국내시장이 세계화된다고 국내산업이 위축되리라는 우려는 아직도 우리가 패배주의적 발상에서 헤어나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세계의 기업들이 그들의 제품을 들고 들어오고자 하는 장(場)을 마련해주면 결국 사람이 따라 들어오게 되고 그것은 또 다른 산업을 낳는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에 또 하나 독점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국제전시장을 늘려나가야만 한다. 국제전시장, 국제회의장을 보다 많이 늘려나감으로써 세계인들의 발길이 잦아지게 해야 우리도 고여 부패하는 물과 같은 정체된 발상을 벗어나 세계 속의 우리 자신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 범국민적인 축제 분위기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민들 입장에서 「우리의 국력이 이만큼 신장됐다」는 설명에 선뜻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물안 개구리 시각을 벗어버리자면 어떻든 세계를 만나야 하고 그러자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세계로 나아가고, 또 세계를 우리 안으로 끌어들여야만 한다. 기업도 생존을 위해 세계적 기업들과 손잡고 들고나기에 열심이어야 하나 정부도 이들의 노력을 도와주어야지 규제나 통제의 입장이어서는 안된다.
당장 국내기업과 일본기업과의 협력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첫 접촉이 어려운 양국기업을 맺어주기 위해 정부는 관의 중개를 선호하는 일본기업의 속성에 맞춰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 계획단계에서 페이퍼 워크가 허술한 국내기업들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모델링작업도 정부가 해당 기업과 협조하며 풀어나갈 일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