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6)

교환기를 통하여 상대방을 호출할 수 있는 전화는 이제 공기와 물처럼 우리 가까이 있다. 우리는 전화를 걸 때 송수화기를 들고 손가락으로 빠르게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만 하면 교환기는 자동으로 상대방을 호출하여 통화가 이루어 질 수 있게 해준다. 전화는 잘 통하고 있을 때 그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통신사고가 발생하여 전화가 두절되면 이용자들은 반복하여 송수화기를 들게 되고, 그것을 감시하는 전자교환기에서는 부하가 많이 걸려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하게 된다.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하면 일반인들은 전화를 사용할 수 없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전화가 불통되면 전화를 이용할 수 없다는 불편뿐만이 아니다. 그 불편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국민 정서상의 문제이다. 전화가 불통일 때 이용자들은 불안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전화가 불통이 되면 고립감을 느끼게 되어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몇 해전 이라크와 다국적 군과의 전쟁이었던 걸프전에서도 다국적 군이 가장 먼저 폭격한 시설 중의 하나가 통신시설이었듯이 전쟁에서 통신 시설의 파괴는 적군의 고립 목적 이외에 적국의 일반 국민들에게 정서적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도 그 목적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16:29.

김지호 실장은 시계를 보고, 교환기의 부하율을 담당하고 있는 한 과장을 불렀다.

『한 과장, 동대문 지점 비상감시회선 아직도 확보 안됐나?』

『실장님, 회선은 확보되었는데 동대문 지점의 감시장치에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회선 상태가 양호한데도 통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데이터도 전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고 발생 전에는 이상 없었잖아?』 『이상 없었습니다. 사고 발생과 동시에 죽었습니다. 지난주 장비에 고장이 발생하여 수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고장이었지?』

『프로그램 고장이었습니다. 프로그램 교체하고 나서 수리됐었습니다.』

『동대문과 가까운 신설동 지점과는 연락 가능하지?』

『동대문 지점만 빼놓고 다 통화 할 수 있습니다.』

『한 과장, 영등포 시외교환기 부하율은 어떤가?』

『부하율이 90%를 넘어섰습니다. 위험 상황입니다.』

『95%까지 올라가면 수동 호 제한 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