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그룹을 포함한 주요 업체들이 전반적인 경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허리띠 졸라매기에 적극 나서면서 원가절감의 최종적인 부담을 전자부품이나 재료 등 협력업체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로 대기업인 전자세트업체들은 최근 정부의 경쟁력 10% 높이기 운동에 발맞추고 원가절감을 통한 대외경쟁력 회복을 꾀하기 위해 각종 씀씀이 줄이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그룹사가 3년 이내에 30%의 비용을 줄인다는 범그룹 차원의 절감운동을 펴고 있는 것을 비롯해 대부분의 그룹사나 업체들이 약간은 심하다 싶을 정도의 긴축방안을 마련, 시행중이거나 추진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그 대상을 협력업체에까지 확대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에는 전자세트업체들이 약속이나 한듯 부품, 재료업체에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납품가격 인하를 요구해 전반적인 경기부진, 세트업체들의 생산기지 해외이전 가속화, 가격경쟁력 저하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전자부품업체들의 한숨을 자아내고 있다고 한다.
주요 전자세트업체들은 최근 정부의 경쟁력 10% 높이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특히 이 운동의 일환으로 가전제품의 가격인하를 단행하면서 협력 부품업체에 대대적인 가격인하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몇몇 세트업체가 최근 협력사에 대해 10% 가량의 가격인하를 요구하는 협조공문을 보냈으며 나머지 대기업 세트업체들도 최근 협력업체에 가격인하를 요청, 구체적인 협상을 진행중인데 채산성이 떨어지는 조립부품의 경우 10% 이내, 소재는 10∼20%의 가격인하를 요구하고 있어 관련 협력업체들이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자세트업체들이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협력업체에 원가절감 동참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세트업체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당수 부품업체의 지적대로 최근 세트업체의 가격인하 요구가 정부의 경쟁력 10% 높이기에 「가시적으로 따라주기 위해」 나온 것이라면 『세트업체의 부담을 부품업계로 전가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부품업체들은 특히 최근의 세트가격 인하가 내수제품에 국한돼 있는데도 세트업체들이 로컬수출을 포함한 모든 부품의 공급가격을 낮추도록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조직이 크면 클수록 방만해지기 쉽고, 작은 조직에 비해 비효율적인 부분도 많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대기업이 그동안의 호황기에 상당히 방만하고 넉넉한 경비를 써온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경기위축에 대응해 비용을 줄이고 불요불급한 지출을 억제하는 등 고삐를 죄는 노력은 말 그대로 「절약」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일로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세트업체들이 긴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눈 앞의 상황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악화돼서라기보다는 아직까지는 정신재무장을 꾀하기 위한 분위기 혁신에 더 큰 목적이 있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정부의 요구에 가시적으로 호응하기 위해 가뜩이나 매년 공급가격 조정을 통해 빠듯하게 책정돼 있는 납품가격의 추가인하를 종용하는 것은 수급기업과의 동반자적인 관계를 해치는 일이자 세트경쟁력의 원천이 될 협력업체들의 부실화와 이에 따른 부품품질 하락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차제에 부품업체들도 국내외 공급처 다변화를 통해 특정 세트업체에 대한 의존을 줄여 자립기반을 다지는 노력을 한층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트업체는 신뢰를 바탕으로 부품업체와 협력할 때 진정한 동반자 관계가 정립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