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호출기(삐삐)의 보급 확산이 가속되고 있다.
91년까지만 해도 가입자가 85만명에 이르던 것이 4년이 지난 95년말 현재 무려 11배 이상 증가한 9백60만여명을 넘어서는 등 정보통신분야중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는 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국민 네 사람 가운데 한명이 무선호출 서비스에 가입한 셈이다.
이처럼 삐삐보급이 확산되다보니 삐삐 하나 소지하지 않은 사람은 이른바 「구닥다리」라고 불릴 정도로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삐삐 대중화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인들간의 생일선물이나, 가족간의 간편한 선물로는 삐삐가 제격인데다 이동전화에 비해 가격, 서비스 이용료가 저렴한 것이 보급 확산의 주된 요인이다.
삐삐가입자 증가세는 96년부터 하향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시각이 대두되는 가운데 양적 성장세는 누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통신개발연구원은 연구보고서에서 무선호출 가입자 수가 2000년에는 1천7백80만명으로 늘어나고 2005년에는 1천9백24만명, 2010년에는 1천9백99만명까지 늘어나 95년말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치를 내놓고 있다.
여기에다가 97년에는 수도권지역에서 제3사업자인 해피텔레콤이 등장, 시장판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무선호출시장이 상당한 양적성장을 이룰 것으로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삐삐의 보급 활성화에 힘입어 국내 삐삐시장은 연간 3천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이 분야 시장에 신규 참여하려는 업체들도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동통신 단말기분야중 가장 많은 40여개의 제조업체들이 치열한 시장쟁탈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국내 삐삐시장은 팬택, 텔슨전자, 스탠더드텔레콤, 엠아이텔, 삼성전자, 모토로라, LG정보 등 7개사가 연간 약 4백만개(신규, 대체수요 포함)에 이르는 전체물량중 80% 이상을 점하고 있다.
최근 들어 삐삐시장은 주로 중소기업체들이 새로운 강자로 부각되는 등 중소기업 위주로 시장경쟁이 활발하게 재편되고 있다.
즉 종전에는 삼성, LG, 모토로라 등 주로 대기업이나 다국적기업이 시장을 주도해왔다면 90년대 접어들면서 오히려 전세가 역전돼 팬택, 텔슨전자, 스탠더드텔레콤, 엠아이텔 등 기술력 있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기업체들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유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단말기 취급품목이 단순해 삐삐시장 진출의 척도인 소량, 다품종 중심으로 신제품을 집중 출시하는 등 덩치가 큰 대기업에 비해 틈새시장이나 새로운 시장을 잠식하기 쉬워 사업이 날로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팬택, 텔슨전자 등 중소 제조업체들은 삐삐 한 종목만으로 연간 3백억원 이상의 매출실적을 올려 시장을 이끄는 기업체로 부각되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세대 감각에 맞는 삐삐를 재빠르게 개발 공급하기에는 아무래도 덩치가 큰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유리한 점이 많다』고 설명하고 있다.
삐삐 신기술개발 경쟁을 중소업체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관심을 끄는 사항이다.
현재 광역삐삐의 경우 텔슨전자가, 문자삐삐는 팬택이, 자동이득조정(AGC)회로를 내장한 광역삐삐는 엠아이텔이, 고속삐삐는 스탠더드텔레콤이, 전자수첩 겸용 삐삐는 RF테크가 각각 선도기업으로 부각되고 있다.
국내 삐삐시장은 종전 뉴메릭 삐삐에서 광역삐삐 시장으로 넘어가는 추세여서 새로운 시장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광역삐삐 서비스는 지난해 7월 한국이동통신이 가장 먼저 개통한 데 이어 한달 뒤인 8월 전국 10개 015지역무선호출사업자들도 동시에 광역삐삐 서비스를 시작함으로써 일반화하고 있다.
광역삐삐 서비스는 서비스의 질을 한 단계 높이는 동시에 무선호출사업자들에는 시장확산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특히 음성사서함 서비스 이용자가 주로 청소년층이었다면 광역 무선호출 서비스는 지방출장이 잦은 직장인들이 주고객이 됐다.
여기에다가 일반 뉴메릭 삐삐의 가격이 거의 바닥을 헤매고 있을 때 고급 서비스로서 광역삐삐 서비스가 탄생, 서비스 사업자들은 물론 무선호출기 제조업체들에도 수익성을 높이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음성사서함 서비스의 경우 95년말 현재 가입률이 45.3%로, 이에 비길 만한 것은 아니지만 광역 무선호출 서비스는 음성사서함 서비스에 이은 또 하나의 히트작인 셈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제공된 문자삐삐 서비스도 또 다른 시장창출을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분석된다. 한글문자삐삐 서비스는 전화나 PC 등 문자입력장치를 이용해 한글 및 영문, 특수문자까지 단말기에 표시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로 숫자만 입력이 가능하던 기존 삐삐의 수준을 한 단계 넘어 보내고자 하는 메시지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가입자들이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가입이 부진하던 것을 지난 9월부터 서울, 나래이통 등 015지역무선호출사업자들이 오퍼레이터가 대신입력해 주는 간접입력방식을 전격 도입, 성공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업체들의 시장참여가 활발하다는 점도 국내 삐삐업계에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이다.
델타콤, 두원전자, 공성통신, 에이텔, 한국포리텍, 리텔 등 무려 10여개 업체가 신규로 이 시장에 참여해 선발업체와의 활발한 시장쟁탈전을 펼치고 있어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에 따라 그간 30여개 정도였던 국내 삐삐 제조업체 수가 올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40여개사로 늘어나는 등 이른바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 삐삐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AGC회로를 내장한 삐삐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난 7월부터 엠아이텔, 모토로라 등이 출시하고 있는 AGC광역삐삐가 소비자들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끌면서 삐삐시장의 주도권이 기존 광역삐삐에서 AGC광역삐삐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이에 따라 팬택, 스탠더드텔레콤, 텔슨전자 등 거의 모든 삐삐 제조업체들이 지난달부터 AGC회로를 내장한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삐삐 제조업체들 사이에서 출시 열풍이 불고 있는 AGC삐삐는 컴퓨터의 마이크로칩과 같은 AGC칩을 내장, 전파장애(블랭킷 에어리어)로 인한 수신불량률을 개선해주는 신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한국이동통신이 확정한 기술규격을 보면 「015」기지국의 △반경 50m 이내에서는 기술규격이 없으며 △반경 50~1백m 이내(제2사업자 전계강도가 -30~-18m) 012의 전계강도가 -95~-75m시 수신율이 80% 이상 △1백~2백m 이내(-40~-25m) 012의 전계강도가 -95~-75m시 수신율을 90% 이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AGC삐삐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해 새로운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AGC삐삐의 효능성이 전파음영지역에서도 획기적인 수신율을 보장하기 어렵고, 심지어 전파환경에 따라 기존 삐삐와 수신율에 있어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게 요지다.
실제로 015기지국 50m 이내에서는 한국이동통신이 기술규격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AGC삐삐나 일반 삐삐나 마찬가지로 수신율이 대폭 떨어지는 동시에 심지어 아예 수신조차 안되는 경우가 더 많아 일반적으로 알려진 효용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여기다가 나머지 거리에서도 양자간의 전계강도가 일치할 경우에만 수신이 가능하지 만약 한가지라도 조건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수신율은 현재의 수치보다 훨씬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전파환경이 날로 고도화, 복잡화돼가는 과정에서 평균 8만원을 웃도는 비싼 삐삐를 소비자들이 부담하고도 그에 상당한 효과를 거두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삐삐서비스 사업자들이나 제조업체들 모두가 AGC삐삐에 대한 마케팅에 열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국내 삐삐보급이 최근 1천만개를 넘어서면서 시장증가율이 둔화돼 사업자들이 이를 타개하는 방편으로 삼는 한편 제조업체들도 AGC광역삐삐가 기존 광역삐삐보다 가격면에서 훨씬 유리해 신기술로 집중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015무선호출사업자들도 덩달아 삐삐 제조업체들에 대해 AGC회로를 내장해 출시하도록 적극 권유하고 있어 앞으로 「012」와 「015」사업자들간 AGC삐삐를 둘러싼 판촉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삐삐시장은 이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기존 단방향 삐삐서비스가 언젠가는 한계에 다다를 것으로 전망, 새로운 통신기술을 속속 개발해 신규수요를 창출하지 않고서는 90년대 초반부터 누려온 고속성장세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삐삐 제조업체들은 앞으로 고속삐삐, 양방향 삐삐, 삐삐와 발신전용 휴대전화(CT2)로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CT2플러스 등으로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한층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김위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