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성리 위성관제소.
깊은 가을이 내려앉아 있었다. 안테나 옆쪽의 은행나무에서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늦가을 바람에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은옥은 하늘을 보았다. 맑고 푸르렀다. 하지만 저 맑은 하늘에 떠 있는 위성에 지금 사고가 생긴 것이다.
은옥은 시계를 보았다.
16:38.
위성시스템에 장애가 생긴 지 벌써 38분. 위성 1호기와 2호기 모두 관제소에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 있었다. 위성시스템을 이용하는 통신회선과 방송회선이 두절되고, 위성 자체의 관제가 불가능한 상태로 된 것이다.
은옥은 김지호 실장을 생각했다. 오늘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하던 남편이었다.
통제실장. 은옥이 근무하는 이곳 위성관제소의 상황도 남편은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은옥도 비상회선을 통하여 서울시내 주요 통신망이 두절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울로 통하는 일반전화도 위성에 장애가 발생한 직후 불통이 되어버려 위성관리센터와의 통신도 비상회선으로 통화할 수밖에 없었다.
통신위성은 지상에 있는 마이크로웨이브 중계국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지상의 지구국으로부터 송신된 신호를 받아 이를 다시 증폭하여 다른 지구국에 재송신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무선신호를 원거리까지 전송하게 되면 수신시에는 아주 미약한 신호가 되므로 위성에서 재송신하기 전에 신호를 수십만배 증폭한 후 지구를 향해 송신하며, 이때 혼 신을 피하기 위해 주파수도 변환하게 된다. 이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위성체 내에 내장되어 있는 중계기이다.
하지만 지상에서 쏘는 전파를 받고 보내는 안테나의 각이 틀어져 있을 경우 위성은 중계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전파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증폭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성은 우주에 떠 있는 쓰레기일 뿐이다. 지구 쪽을 향하여 안테나의 방향을 정확하게 잡고 있어야 전파중계를 수행할 수 있지만 지금은 위성 안테나 각도가 틀어져 통신과 방송의 전파중계는 물론, 위성 자체의 관제를 위한 통신이 불가능해져버린 것이다.
은옥은 다시 하늘을 보았다. 쪽빛 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은옥은 10미터가 넘는 대형 안테나 위로 드리워진 하늘을 바라보면서 지나온 세월들을 떠올렸다. 발사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하지만 이번 작업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위성은 영영 활용할 수 없는 우주의 고철덩어리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