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 日 소니 DVD판매연기 배경과 전망

「탄생 DVD(디지털다기능디스크)시작된다. 도시바로 부터 시작된다」.

일본의 도쿄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에 있는 도시바 건물에 지난달부터 내걸려 있던 대형 현수막의 내용이다.

그 내용대로 도시바는 마쓰시타電器와 함께 자국시장에서 이달 1일 세계 최초로 DVD플레이어를 상품화, DVD시대을 열었다.

그러나 도시바와 함께 DVD주도권 다툼을 벌여 온 소니는 상품화에 나서지 않았다. 당초 올 가을로 예정했던 DVD플레이어의 판매시기를 내년 봄으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DVD시장은 도시바와 마쓰시타만이 참여하는 2파전 구도로 일단 출범하게 됐다.

이는 사실 예정된 결과이다. 지난달 초 치바에서 열린 96년 일본전자전에서 도시바가 자사 제품을 적극 홍보한 데 대해 소니는 상품화에 침묵을 지킴으로써 이 상황은 이미 예고됐다.

그러나 컴팩트디스크(CD)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간 신제품을 다른 경쟁업체에 한발앞서 판매하며 AV시장을 주도해 온 소니에게 있어 DVD의 후발참여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DVD가 영화등의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 차세대디스크로 무한한 성장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니의 상품화 연기는 의외의 일로 받아들여 진다.

그렇다면 소니는 왜 상품화시기를 늦춘 것일까.

이와 관련 파이오니아의 야마구치 타다히로시 가전사업본부장은 기술상의 문제를 지적한다. 소니는 현재 기술적으로 양산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제품연기는 불가피하다는 게 그 요지이다. 규격경쟁에서 사실상 패했기 때문에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난 소니라 해도 반년이나 1년만에 따라붙는것은 어렵다는 것이 그 판단의 근거이다.

금세기 최후의 대형상품으로 불리는 DVD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주요 가전업체들은 두개 진영으로 나뉘어져 규격경쟁을 벌였다. 지난 94년 12월 CD특허를 가진 소니와 네달란드 필립스는 단판식과 3.7GB의 「MMCD(멀티미디어컴팩트디스크)」규격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도시바, 마쓰시타, 파이오니아등 7개사 연합은 지난해 1월 디스크 두장을 합치는 양판식과 5GB의 「SD(슈퍼덴시티)」규격을 내놓고 MMCD진영과 맞섰다. 두 진영은 지난해 9월 규격을 통일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통일규격은 양판식 5GB의 SD규격에 일부 소니진영의 신호처리방식을 채용함으로써 SD진영의 주장이 거의 받아들여지는 형태가 됐다.

따라서 야마구치 본부장의 주장은 이런 시점에서 방향전환을 요구받은 소니가 도시바 마쓰시타등과 함께 동시판매에 나서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이다.

이에 대해 소니의 아오키 쇼메이 상무는 기술적 지연을 전면 부정한다. 그는 「통일규격의 조정작업이 늦어져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소프트웨어 부족을 이유로 든다.

그는 「7, 8만엔이나 하는 플레이어를 구입한 소비자들은 매일 사용하고 싶어할 텐데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플레이어를 판매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오히려 조기 상품화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실 연내 등장하는 소프트웨어는 빈약하다. 일본 국내에서 20개 타이틀정도가 나오고 그것도 음악중심 제품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판매시기가 수개월정도 차이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쇼메이 상무의 주장이다.

컴퓨터업체의 한 관계자도 소니의 기술적 문제를 부정한다. 그는 『소니가 11월 판매를 목표로 인력을 투입했다면 그것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소니측의 주장에 간접적으로 동조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소니는 실제로 소프트웨어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확보해 하드웨어와 동시판매한다는 전략을 마련, 그 일환으로 현재 그룹산하 영화사인 미국 소니 픽처즈 엔터테인먼트가 소유하고 있는 수십개 타이틀의 DVD화를 추진중이다.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사장은 양산체제는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소프트웨어에서 우위를 확보하면 승산이 있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현재로는 소니의 상품화연기 결정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그 결정이 어떤 이유에 의한 것이든 소니의 앞날은 소프트웨어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니측에는 다행스럽게도 소프트웨어면에서 시장상황은 아직까지는 좋지 않다. 타이틀 수도 빈곤할 뿐아니라 호환성 문제로 발매계획이 연기되는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미온적이었던 미국 영화업계에서 최근 상품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도시바와 제휴관계에 있는 타임워너는 이달중 일본시장에 3개 타이틀을 내놓는 것을 시작으로 내년 2, 3월까지 총 1백개의 타이틀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타임워너의 지원을 등에 업은 도시바가 연말 성수기를 통해 도약할지, 자체 소프트웨어 확보를 무기로 수개월 뒤져 참여하는 소니가 추월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신기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