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57)

절정.

사내는 눈을 감은 채 절정의 순간을 맞은 백인여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직도 꼿꼿하게 서 있는 자기의 물건을 쓰다듬었다.

천천히. 사내는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쓰다듬으며 화면을 응시했다. 뒷마무리를 하듯 백인여자가 흑인남자의 아랫도리를 두 손으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모든 것을 분출해버린 흑인남자가 넋이 빠진 채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사내는 결코 조급하지 않았다. 사내에게 섹스 영상물은 새로운 자극을 주지는 못했다. 다만 보조매체일 뿐이었다. 사내는 처음으로 섹스 영상물을 보았을 때의 경이로움과 수치심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만 상품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사내는 섹스상품도 일반상품과 마찬가지로 생산적인 활동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자신의 노동력과 자본, 시간이 투입됨으로써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는 상품을 창출해내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섹스상품이 소비적이고 향락적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었다.

섹스 영상물도 일반 영상물과 마찬가지로 재미있고 멋진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며, 그것은 소비자 지향적인 자본주의 당연한 특성이다.

섹스 영상물은 많은 소비자들에게 호기심과 자극을 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고, 사내 또한 적절하게 그 상품을 이용할 뿐이다.

매춘도 섹스 영상물과 마찬가지였다. 포르노 배우의 연기나 매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행위들은 분명한 상품이다. 당당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서비스 상품이다. 배우나 창녀들은 매우 힘든 노동을 한다. 일단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다.

이러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기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절실한 경제적 필요가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정이 가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온갖 정성을 다해 자신의 육체를 제공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나 가수나 탤런트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섹스 영상물 배우와 창녀들은 그 사회에서 평균 이상의 용모를 지녀야만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내는 피우던 담배를 끄고 일어서 바지를 추스렸다. 사내의 아랫도리가 저항하듯 버티었다.

사이렌소리가 이어지고, 연기가 자욱하게 실내로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