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분야에서 이제까지 「부동의 왕좌」를 지켜오던 시스코시스템즈의 위상이 조금씩 흔들리면서 이 분야의 판도변화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세계 라우터시장의 80%, 국내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매출 실적을 올리고 있는 시스코시스템즈의 지위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라우터의 영향력 감소가 예견되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시스코시스템즈는 매출의 대부분을 라우터에 의존해 왔다. 근거리통신망(LAN)의 부상에 따라 케이블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던 라우터는 시스코시스템즈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왔던 것.
그러나 최근들어 라우터의 기능을 탑재한 다른 종류의 장비들이 속속 선보이면서 시스코시스템즈는 더이상 과거와 같은 한가로운 모습을 견지할 수 없게 됐다.
입실론, IBM, 스리콤, 베이네트웍스, 디지탈, 케이블트론 등 내로라하는 네트워크업체들이 시스코시스템즈를 긴장시키는 주인공들.
이들은 시스코시스템즈의 최대무기인 라우터에 대항할 수 있는 장비를 계속해서 발표하며 시스코시스템즈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공격적인 경영방식과 새로운 기술, 제품을 내놓으며 네트워크업계를 춘추전국시대로 몰아넣고 있다는 평이다. 다소 성급하게 판단하는 이러한 견해가 전문업체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이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올해초부터 시스코시스템즈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려는 업체들의 노력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며 『계속해서 쏟아지는 입실론의 인터넷프로토콜(IP)스위치, IBM의 멀티프로토콜스위치드서비스(MSS), 스리콤의 패스트IP 등이 라우터의 대체품으로 기업들에게 강력하게 다가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각종 프로토콜을 클라이언트 주소별로 분배하는 라우팅기능은 존재하겠지만 이 기능을 독점했던 라우터의 지위는 사실상 격하되지 않겠느냐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물론 이같은 업체들의 공세에 시스코시스템즈도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중이다. 라우터기능을 향상시키는 태그스위칭 기술을 부랴부랴 내놓는 한편 원거리통신망(WAN) 분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성을 지키기 위한 시스코시스템즈의 노력은 이와 함께 종합정보통신망(ISDN), 프레임릴레이접속장비(FRAD) 등 각 분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수성 움직임은 시스코시스템즈 역시 「라우터로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제스처라는 식의 역설적인 해석을 낳고 있다.
라우터를 앞세운 시스코시스템즈의 역할이 줄어들고 그 빈자리를 노린 업체들의 노력이 네트워크업계에 춘추전국시대를 불러올 지 주목된다.
<이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