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글번역과 한글의 과학화

최근 인터넷 활용이 늘어나면서 영어나 일본어로 된 문서를 한글로 번역해 주는 소프트웨어가 인기다. 외국의 유명 인터넷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외국어로 된 문장을 자동으로 번역해 주어 귀찮게 사전을 찾아볼 필요가 없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인터넷 붐을 타고 형성된 번역소프트웨어는 올해 20억원대에서 내년에는 이보다 5백% 가량 신장된 1백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되며 활용측면에서도 웹브라우저 접속형이나 워드프로세서 통합형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어 앞으로 소프트웨어의 큰 지류로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번역소프트웨어로는 영어를 한글로 변환하는 영한제품과 일본어를 번역해주는 일한제품 등 2개 종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들 제품중 대다수는 인터넷 웹브라우저 등 온라인 환경에서 번역이 가능하며 A4크기 문서를 불과 몇십 초 내에 번역할 정도로 빨라지면서 문법적인 틀이 완벽하게 갖춰진 문장의 경우 번역 완성도가 95% 이상이라는 게 개발업체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능으로도 어려운 번역을 컴퓨터인 기계가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가 단순히 단어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와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례로 기계번역의 치명적인 오류로 자주 등장하는 것 중 하나는 『Time flies like an arrow.(시간은 화살처럼 빠르다)』라는 문장인데 이를 컴퓨터로 번역할 경우 『시간 파리는 화살을 좋아한다』 등으로 오역될 수 있다.

이러한 데는 번역하기 위한 국내 기반기술을 제대로 축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번역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한 단순한 프로그래밍 기술이 아니라 한글 자체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나 문법연구, 단어 및 언어구조에 대한 체계적인 기반이 다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시판되고 있는 영한 번역프로그램에 있어 일부제품을 제외하고는 번역완성도가 20%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는 한글과 문법이나 어순이 유사한 일본어를 영어보다 훨씬 더 잘 번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번역이 단어만의 조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국내 기계번역의 문제로는 일한, 영한 번역제품은 있어도 반대로 한일이나 한영번역과 같이 우리의 글을 외국어로 바꿔주는 제품은 상품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한글의 과학화가 부진했기 때문이며, 그 근복적인 이유는 국어학자와 컴퓨터공학자간의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데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최근 서울대에서 국문과 출신이나 불어, 중국어 등 어학 전공자들이 언어공학적인 측면에서 번역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고 나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번역에 대한 특허가 이미 최초의 컴퓨터인 ENIAC이 탄생하기 이전인 지난 33년 러시아의 트로얀스키에 의해 등록될 정도로 몇십년 전에 시작되었고, 미국을 위시해 일본, 독일, 캐나다 등은 번역연구를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수행할 정도로 정부나 기업차원에서 의욕이 대단하다. 특히 우리와 문화수준이 유사한 일본의 경우 후지쯔의 ATLAS나 도시바의 TAURUS, 교토대학의 MU시스템 등의 번역연구프로젝트는 기업과 정부가 주도해 결실을 맺은 제품으로 영일이나 일영번역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한다.

반면 국내의 경우 몇 년전 서울대에서 영한번역을 연구할 당시 우리 정부나 국내 기업이 아닌 외국업체가 개발비를 지원해 연구에 착수했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에는 외국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이 외국사람과 아무런 제한없이 대화를 나누고 외국기업와 언어의 불편없이 무역을 하는 고도 정보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나 기업은 한글을 과학화하는 기초토대를 마련하는데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