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96 전자산업 부문별 결산 (1);프롤로그

올해 전자산업은 안팎으로 고단한 하루의 연속이었다. 전자수출이 지난 80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고 내수시장마저 꽁꽁 얼어붙어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예상치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생산은 약 6백25억달러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보다 2% 감소한 것이다.

지난해를 되돌아보면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올해 수출이 부침현상을 보인 것은 다름아닌 반도체 가격하락에 따른 수출감소 때문이다. 16메가D램의 가격이 50달러에 이를 정도로 수출시장에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 온 반도체의 가격이 올들어 폭락을 거듭, 지난 10월께는 그나마 1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올해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수준인 2백20억달러선 또는 이보다 밑돈 2백억달러선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비관적인 전망마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반도체 외에도 음향기기, VCR, 모니터 등 이른바 수출효자군에 속하는 제품마저 덩달아 수출부진의 늪에서 허덕였다는 점이다. 이는 올들어 몰아닥친 엔低현상으로 우리 제품군이 급격히 경쟁력을 상실한 데 기인한 것이긴 하나 고비용, 저효율에 의한 수출단가 상승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나마 컬러TV, 냉장고, 세탁기 등 이른바 「수출시장에서 한물갔다」고 꼽힌 제품들의 선전과 컴퓨터 주변기기의 예상 외의 큰 신장은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성과로 꼽을만 했다.

특히 제품의 얼굴로 꼽히는 평판디스플레이의 경우 전년대비 90% 이상 증가한 약 3억달러의 수출이 예상됐고 CD롬 드라이브도 선진국들의 높은 시장장벽에도 불구하고 약 2억5천만달러의 수출을 달성할 전망이다. 이는 전년대비 약 70% 증가한 것이다. 이들 품목은 앞으로 수출시장에서 큰 활력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올해 전자 전체수출은 연초 책정한 5백억달러 목표 달성에 크게 못미친 약 4백10억달러, 전년대비 6% 마이너스 성장이란 80년 이후 사상 처음 수출감소라는 실적을 남기게 됐다.

이같은 수출부진에 반해 수입은 오히려 8%라는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전자부품의 경우 지난 10월 말 현재 1백22억달러를 기록, 가전, 산업전자 등을 포함하면 약 2백7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시판은 컬러TV와 VCR, 음향기기, 세탁기 등이 이미 보급률 포화상태에 들어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기대주로 떠올랐던 와이드TV마저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 그나마 에어컨의 여세는 올해에도 계속 이어져 시판의 성장률을 9%대로 끌어 올리는 데 「지대한」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전자산업의 마이너스 성장에 반해 전자와 관련한 각종 제도는 올들어 선진형으로 대폭 바뀌는 양상을 보였다. 위해제품에 대한 회수를 의무화한 리콜제가 지난 4월부터 본격 실시됐고 부품보유 연수기간이 5년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소비자보호법이 새로 제정되기도 했다.

업계가 강력하게 반발, 내년으로 미뤄진 제조물책임법(PL제도)시행도 올해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이는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위해 소비자와 관련한 각종 법령을 선진형으로 바꾼다는 방침에 의해 취해진 조치이긴 했으나 업계에는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더욱이 환경과 관련한 폐가전처리 문제는 업계의 「애물단지」처럼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따라 가전업계는 총 5백92억원을 투자, 올해부터 오는 99년까지 서울과 중부권, 영남권, 호남권 등 5개권역에 리사이클링센터를 건립하고 수도권에 3곳, 중부권 1곳, 강원권 1곳, 영남권 2곳, 호남권에 1곳 등 총 5개 권역에 8개 광역집하장을 개설한다는 내용의 폐가전제품회수 재활용 공동사업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발표에도 불구하고 환경부가 컬러TV와 세탁기, 에어컨에 대한 폐가전예치금을 종전에 비해 평균 2백% 인상하고 냉장고를 폐가전 예치금대상 품목으로 새로 추가하는 자원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 통과시키려 하자 업계는 크게 반발했다.

결국 품목당 평균 30% 인상에 냉장고를 추가한다는 절충안을 내놔 타결을 봤으나 업계는 연간 1백억원이라는 환경개선 부담금을 추가로 떠 앉고 말았다.

이같은 산업계의 비용증가에 반해 정부의 지원시책은 「잰걸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중 업계의 수도권 공장증설 요청에 따른 규제완화 대책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초 정부는 첨단산업에 대해 공장 신설을 적극 허용하고 반도체업계의 최대 숙원이 공장 증설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해 놓고 자연보전권역에 대한 공장 신, 증설은 불허, 산업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공장총량 규제는 그대로 둔채 현재의 공장 등록기준만 건축면적 5백 제곱미터 이상으로 상향조정, 말 그대로 전시효과만 거두려 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 자본재 수요기반 확대를 위해 국산기계 구입 및 리스용에 대해 약 25억달러의 외화대출를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이자금은 발표시점에서 거의 바닥을 드러내 「정부의 생색내기」였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에따라 산업계는 경쟁력 약화에 따른 생산비 절감 등 경영효율 극대화를 위해 광속거래(CALS)등 잇단 생산성 향상 프로그램을 개발, 현업에 적용키로 하는등 대책마련에 나서기도 했으며 일부에서는 「명예퇴직」이라는 극단의 기업 회생노력을 꾀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유통시장의 전면 개방도 올해의 또다른 조류를 양산하기도 했다. 외국기업에 대한 매장면적과 점포수의 제한이 사라지면서 대형 할인점들이 잇달아 출현, 국내 중소 대리점들을 크게 압박했다. 특히 가격경쟁에서 뒤진 중소 대리점들의 경영난은 크게 심화되기도 해 도산하는 대리점들이 속출하기도 했다.

이밖에 가전업계의 멀티미디어 출시경쟁은 산업계의 눈요기 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LG전자는 개인휴대통신(PDA)과 PDP를 채용한 TV 등을 개발, 시장선점에 나섰고 삼성전자는 감춰진 화면을 찾아준다며 「명품플러스 1」TV와 국내 최대 PDP TV 등을 개발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또 대우전자는 인터네트 TV를 출시, 눈길을 끌었다. 이는 정보통신에 대한 역할이 비등해 지고 자사의 첨단제품 개발력을 과시하기 위한 때문인데 이같은 개발의 성과는 올해보다 내년을 기점으로 나타날 듯 싶다는 게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올해의 전자산업은 고단한 한해를 보낸 만큼 우리제품의 국제 경쟁력을 새삼 짚어보게 하는등의 자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사실 일부에서는 올 전자산업을 크게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지역 블럭화현상과 시장다변화의 실패, 중국, 말레이시아 등 후발개도국의 가격경쟁 등으로 부진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지난해의 수출이 의외의 큰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에따라 이같은 우려의 현상이 올해 이어질 것보고 산업계에 대비책을 주문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은 꼴로 나타났다.

이제는 반도체에만 의존하는 수출구조는 더이상 안된다. 수출부진이 우리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말할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고비용, 저효율로 이어지는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제품생산은 대거해외로 이전하는 용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비메모리분야 등에 집중 투자하는 탈 메모리사업 구조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같은 산업계의 움직임 못지않게 정부의 기업 행정규제 완화의 노력은 더욱 탄력적으로 전개돼야 할 것이다. 정부의 구호에 의한 경쟁력 높이기 보다는 규제 철폐라는 對기업 처방전이 백약처방 보다 낫기 때문인 것이다.

<모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