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70)

훨훨 솟아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는 혜경의 눈빛.

그것은 환희의 눈빛이었다.

희열의 눈빛이었다.

광기, 카오스적인 눈빛이었다.

현미는 혜경을 불렀다.

『혜경씨, 무엇을 그렇게 바라봐?』

『응?』

『뭘 그렇게 바라보느냐고.』

『응, 땅속에서 불길이 솟구치고 있으니까 신기하잖아. 땅속에 무엇이 있기에 저렇게 불길이 거세게 타는지 궁금하잖아.』

『통신케이블에 불이 붙었다잖아. 이 부근의 모든 건물에 전화를 다 쓰려면 얼마나 많은 통신케이블이 필요하겠니?』

현미는 혜경의 눈빛을 다시 살폈다.

원래의 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현미는 혜경의 그런 모습을 몇 번인가 본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혜경의 눈빛은 예전과 달랐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고 치열한 눈빛이었다.

소방관들이 관창을 들이대고 솟아오르는 불길에 물을 쏟아붓고 있었다. 불길이 너무 세어 가까이 접근하지 못한 채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물을 쏟아붓고 있었다.

열개 가까이 되는 소방호스에서 쏟아붓는 물줄기에도 아랑곳 않고 불길은 계속 솟구치고 있었다

「아, 팩시밀리.」

현미는 순간적으로 팩시밀리를 떠올렸다.

은행 한쪽 구석에 놓여져 있는 팩시밀리의 코드를 그대로 두고 온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혜경씨, 팩시밀리 코드 그냥 두고 나왔어. 어쩌지?』

『팩시밀리? 그래, 팩시밀리에는 전화선도 연결되어 있어.』

『이 대리한테 가서 말해줘야겠다.』

『현미씨 혼자 갔다 오면 안될까?』

『나 혼자?』

『응, 나 구경 좀 더하게.』

현미는 은행으로 들어서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은행 제복을 입고 솟구치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는 혜경의 모습에 어떤 치열한 모습이 느껴졌다. 그동안 작은 일에도 늘 함께하던 혜경이었다.

현미는 불꽃을 향해 서 있는 혜경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은행으로 들어섰다.

훨훨 불꽃이 솟아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