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과기특별법 제정 미뤄서는 안된다

과학기술정책은 경제를 부양하는 「필수 아미노산」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경제를 떠받치는 과학기술의 기초를 제대로 닦지 않고는 더이상 우리의 당면 과제인 경제난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형적인 산업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원천기술과 설계능력 등 고급기술이 개발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부가가치면에서 중저급 산업군에 머물고 있는 산업구조를 꾸준히 고부가가치 산업군으로 구조조정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도 역시 기술이다.

따라서 과학기술특별법을 제정해 정책 기조를 경제난 극복에 맞추려는 과학기술처의 시도는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만 하다. 과기처는 과학기술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경제난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고비용 저효율」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한 전략을 특별법 제정으로 가시화하려는 것이다.기술을 경제와 연계시키는 새로운 과학기술정책 패러다임에 거는 기대를 거는 것도 경제난을 타개하는 데는 기술만큼 더좋은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기처가 심혈을 기울여 온 과학기술특별법 제정이 해를 넘기게 됐다. 과학기술처가 입법예고한 과학기술특별법(안)이 국회 통신과학기술위 원회 심의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의 법안 수정요구로 본회의 상정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과기특별법 자체를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은 거의 없다. 투자 비율과 총괄기구의 결정에 이견이 있을 뿐이다. 정부안과 별도로 야당이 내놓은 법안은 96년 현재 2.79%인 정부예산 중 연구개발예산의 비율 을 연차적으로 늘려 2002년까지 5%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과기처의 원안도 2001년까지 정부예산 중 연구개발비의 비중을 5%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재정경제원의 반대로 5% 목표가 삭제되고 말았다. 연구개발비의 5% 확대는 과학기술단체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합창해 온 공동의 목표이다.

물론 법률안에 투자액을 고정화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시각차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정부 예산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재경원과 특별법의 의미를 살리려는 야당 의원들간에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입장 차이에 연유한다. 재경원은 재경원대로 법률에 예산 목표치를 못 박을 경우 예산의 신축성이 저해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반영불가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고 법안을 발의한 야당의원들은 투자 목표치가 빠진 특별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이에 맞서고 있다.

또한 야당안에는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연구개발평가원을 총리실에 둬 13개 부처로 나누어진 연구개발사업을 총괄하게 하는 내용도 추가돼 있다.

따라서 정치권의 결단이 늦어지면 질수록 과학기술투자를 크게 확대하고 있는 선진국들과의 기술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기술선진국들은 과학기술 예산의 비중을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과학기술 예산을 5년 동안 1.7배 증액해 2000년 에 총예산 대비 연구개발 비중을 6.1%로 올리기로 했다. 미국도 21세기 과학기술시장 석권을 위해 첨단기술개발 예산의 비중을 현재 3%에서 2000 년 5%로 확대한다는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등 선진국들의 과학기술투자 확대가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번 떨어지면 아무리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다 해도 쉽사리 끌어올려지지 않는 것이 바로 기술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경쟁력이다. 따라서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총체적이고도 전략적인 국가기술개발계획을 세워 집중 관리하지 않는 한 대망의 21세기를 바람직한 미래로 돌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선진화 이외에는 선직국에 진입하는 다른 길이 없다는 데는 정부와 정치권이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이상 특별법 제정이 늦어져 시행계획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