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사회는 개인의 시대다. 디지털사회에서는 개인이 존중되고 동시에 개인의 역량이 요구된다. 따라서 디지털시대에는 개인이 조직을 초월해 한사람 한사람이 제안역을 가지며, 그 제안력을 바탕으로 주장하고 활동하는 시대다. 또 디지털사회는 지식을 새로운 사회자원으로 "지식의 민주화"를 실현한 "후기공업화 사회"가 될 것이다. 동시에 종래의 공업화 사회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은 바뀌어 갈 것이다.
공업화 사회에서는 풍요하다는 것은 양으로 나타내졌다. 물건이 많으면 많을수록 풍요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디지털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 디지털사회에서는 무엇을 가지고 풍요하다고 하는가, 무엇을 가지고 인생의 충실이라고 하는가.
그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바로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경영컨설턴트 다구치는 말한다.
"이 물음에 대해 지금 우리는 유효하고 합당한 사상이 필요하다. 명치유신이래, 일본이 의지해온 서양유 근대합리주의라고 하는 것을 충분한 유효방책으로서 우리들은 지키며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를 일언지하에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것이 낳게 될 모순은 커질 뿐이다. 이제 근대 합리주의의 무능함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까지 와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근대합리주의를 보완할 대체안을 가지고 있느냐고 하면, 하나는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동양적 사고가 그것이다"거기에는 서양유 근대합리주의를 보완할 동양의 사고방식, 동양사상이야말로 디지털 사회를 지지해 가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견해가 있다.
서양의 근대 합리주의에는 뉴턴의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근대과학이 있지만, 이것은 두뇌로 세계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공업화 사회에서는 두뇌로 세계가 파악됐었다. 그러나 디지털사회가 되면 이미 앞에서 서술했듯이 정의영역이 나타나게 된다. 두뇌만으로는 세계를 파악해 갈 수가 없다.
오히려 동양유의 실증주의에 의해 몸속 깊은 밑바닥에서 이해하고 획득한다고 하는다구치가 주창하는 다구치유의 오성적 이해가 요구될 것이다. 서양철학에 있어서의 형이상학적 사유에 대해 동양사상에는 오성적 사유가 있는 것이다. 오성적이라고 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깨닫는다는 것으로서, 소위 자신을 초월한 보편적 이해라고도 할 수 있다. 대상의 파악방법에 있어서는 근대 합리주의에서의 "대상을 세분화해서 이해한다"고 하는 접근방법과는다르 다. 총체를 송두리째 받아들여 감각 또는 그것을 초월한 초감각에 의해인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양사상은 먼저 총체성이나 관계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전체를 보고 총체를 파악해 그것의 실체에 접근하려고 한다. 그리고 전문성을 중시함으로써 다양성을 중시하며, 지식보다는 지식과 실천의 융합을 중시한다.
현재, 세계 지성들의 방향성이라는 것은 오성적 사유를 보다 깊이 구명하자는 것이라고 다구치는 단언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성적 사유를 보다 깊이 구명하는 사고방식을 홀리스틱(holistic)이라고 부른다. 이는 철학용어로서 우리말로는 포괄적, 총체적이란 말이 되는데 지금은 여러 학문의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홀리스틱은 신성(holy)이란 말에서 유래된 말로, 그 어원은 희랍어의 홀로스(holos)다. 같은 어원을 갖는 말에 건강(health)이 있으며, 사람의 건강이라는 것도 마음.신체.정신의 3위가 고르게 건강하다는 것, 즉 사람이라고 하는 총체로 보는 데서 성립된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상의 흐름을 지적한다.
근대 합리주의 과학을 떠받치는 사고방식은 이 세계 모두를 기계로 보고 취급하는 기계론적 세계관과 그 세계관을 구체화하는 방법으로서 대상을 구성요소로 나누는 요소환원주의가 있다. 먼저 근대과학의 패러다임 전환의 물결은 환원주의에 대한 의문으로 돼, 결국에는 비판대상이 되어 학문 전체에 확산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