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가 매킨토시를 따라 잡지 못한 이유중 하나는 기술력 때문이였다. 자문위원회는 매킨토시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컴퓨터 버전처럼 넥스트의 입방체형 컴퓨터에 장착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실행하도록 요구된 모든 기능들을 처리하기에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점에서 성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킨토시의 경우 대학은 관대한 입장을 취하였다.
매킨토시 소프트웨어는 탁월했기 때문에 하드웨어 단점들을 눈감아 줄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전만큼 관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넥스트 소프트웨어는 매킨토시 소프트웨어와 비교될 것이고 빠른 처리속도를 원하는 고객들에게 넥스트는 그당시 RISC(명령어 축소형컴퓨터)라고 하는 신형 마이크로 프로세서로 그 속도를 맞추기 시작한 다른 컴퓨터들과는 경쟁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분야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 의미는 컴퓨터 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RISC를 채용하는 것이 최대한 위험부담 없이 컴퓨터의 성능을 높일 수 있는 방범으로 밝혀졌다.
1970년 중반 존 코크를 팀장으로한 IBM 연구진들이 개발한 RISC(명령어축소형 컴퓨팅)칩은 컴퓨터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로부터 회의적인 평가를 받았었다. RISC칩이 CISC(복합명령어컴퓨팅)를 기본으로하는 기존의 마이크로 프로세서보다 계산성능이 빨라질 것인지는 즉시 밝혀지지 않았다. 이 두 종류의 컴퓨터는 여러 가지 명령어를 수용했다. RISC를 장착한 컴퓨터는 여러번 간단한 명령을 하면 주어진 계산을 실행했고 CISC를 장착한 컴퓨터는 조합이 상당히 줄어든 여러 복잡한 명령을 내리면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으로 충분했고 전문가들도 상식적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1980년 중반이 되자 RISC를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RISC가 CISC보다 기능적으로 앞서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디자인도 비교적 간단했기 때문에 저렴하게 제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차세대 컴퓨터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넥스트 자문위원회는 입방체형 컴퓨터가 소개되기 바로 직전 밝혀진 컴퓨터 가격을 듣고 아연실색 했다. 그들은 그런 제품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잡스도 그같은 제품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위원회 위원 중 한명은 옛날 교육용컴퓨터 회의에서 컴퓨터 가격이 3천달러에 근접하도록 노력하겠다던 잡스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대학측은 잡스가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가격을 낮춘다는 것도 때늦은 일이었다. 이 위원회는 넥스트의 명분에 신의를 보여주기 위해 그들이 미리 받은 주문을 밝혀야했다.
사람들은 이제야 자문 위원회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문 기구가 아니고 캠퍼스에서 컴퓨터를 담당하는 주요 인물들을 모아 놓은 마케팅 기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컴퓨터가 발표되기 전에 소집된 회의에서 넥스트의 중역진은 자문 위원회가 받은 주문 내용을 받아야했다. 그들은 이를 뽑아내려는 치과 의사의 펜치를 피하려는 어금니처럼 늑장을 부리며 굳은 표정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그들은 애플이 했던 것처럼 2백만달러의 수주 목표를 세우려 하지 않았다. 넥스트는 대학이 요구하는 만큼의 물량을 공급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자문 위원회는 계속 재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합해봐야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주문만을 받아 낼 수 있었다.
잡스는 크게놀랐다. 그가 점찍어 놓은 가장 중요한 고객들이 일을 맡기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상황은 잡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넥스트 직원들은 넥스트가 자기 고객들에게까지 벌을 줄 만큼 바보스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대학 대표들이 그들에게 강압적으로 주어진 수주목표를 채울 뜻이 없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잡스는 그때 자기가 전적으로 매달려 해결해야할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었다. 그때 아무나 용감하게 나서서 비용은 제쳐 놓고서라도 컴퓨터를 혁신시킬 수 있는 제안을 잡스가 다시 한번 검토하도록 강력히 요구했었더라면 일이 해결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중한 자문 위원회가 넥스트에 위기 위식을 조성하지 않은 이유는 쉽게 설명될 수 있다. 그 당시 넥스트는 자기 고객을 확보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넥스트는 단일 고객치고는 가장 큰 규모인 IBM을 이미 확보해 놓았기 때문이다. IBM이라는 업체를 동지로 얻고 그 동지와의 거래에서 들어 오는 현금을 얻게된 넥스트에는 거드름을 피우며 우쭐대는 사람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IBM과의 거래는 잡스가 고위층 인사들을 잘구슬려 이루어낸 업적이었다. 겉으로 보면 작은 신생 기업인 넥스트가 1987년에 워싱턴 포스트지의 발행인인 캐서린 그래햄의 생일 파티에 초대될 수 있고 또 IBM의 회장인 존 에이커스를 만나는 자리에서 IBM의 사업 전환 방향에 대한 의견을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허세를 가진 유명 인사를 중역으로 둘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