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 컴퓨터 산업의 강자를 가린다면 어느 기업을 최우선으로 꼽을 수 있을까.
과거의 화려한 명성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다는 점에서 IBM을 꼽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80년대 이전 메인프레임으로 컴퓨터 산업을 이끌었던 IBM은 80년대 이후 자사가 개척한 PC 분야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에 밀리는 수모를 겪고 있지만 아직까지 세계 최대의 컴퓨터 업체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선, 전통의 메인프레임 분야에서 IBM의 지배력은 여전하다. 연간 80억달러를 형성하고 있으며 최근들어 다시 성장세로 돌아서고 있는 이 시장에서 IBM의 점유율은 항상 70%이상을 유지해 왔으며 특히 지난해엔 83%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히타치제작소와 후지쯔가 이 분야에서 IBM의 경쟁업체라 할 수 있으나 위협적인 존재가 못된다.
독립 소프트웨어 업체가 아니어서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내주고 있긴 하지만 사실 매출액면에서 IBM은 마이크로소프트를 능가하는 소프트웨어 업체이기도 하다.
95년 기준으로 이 회사의 소프트웨어 총매출액은 1백27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보다 50%이상 많은 금액이다.
이중 메인프레임 소프트웨어의 매출액은 96억달러로 이 분야 하드웨어 매출액보다 50%가 많다. 특히 메인프레임 운용체계(OS)인 OS/390으로 IBM이 한해동안 벌어들이는 금액은 2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다른 한편, 트랜젝션 처리에서 그룹웨어에 이르기까지 IBM이 메인프레임 소프트웨어 분야 경쟁자들을 양산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데이터베이스 분야의 오라클, 시스템 관리 소프트웨어 분야의 컴퓨터 어소시에이츠 등이 대표적인 경쟁업체로 꼽힌다.
이와 더불어 IBM이 최근 몇년동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는 분야는 네트워크다.
클라이언트서버 환경아래에서 고성능 PC의 보급 확대는 IBM의 메인프레임 수요를 크게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들어 IBM의 메인프레임 매출액이 89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IBM은 그러나 가격 인하 및 PC와 연계성을 갖도록 하는 메인프레임 신기술 개발로 이같은 난관을 헤쳐나가려 하고 있다.
최근 커다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오라클 주도의 「네트워크 PC」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역시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IBM은 네트워크 PC에 기반한 시스템 구축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서버이며 특히 그 중에서도 기업 고객의 인터넷 활용 추세가 확산됨에 따라 대용량 제품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메인프레임의 수요가 다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BM이 메인프레임을 요즘 들어 「수퍼서버」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IBM의 새로운 고민이 싹트고 있다.
IBM이 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자사 메인프레임을 이기종 제품들과의 호환성을 강화할수록 메인프레임의 새로운 수요를 발견할 기회를 가짐과 동시에 이기종 제품과의 차별성 상실로 자사 메인프레임이 다른 제품으로 손쉽게 대체될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는 것이다.
이는 IBM 스스로 컴퓨터 시장에서 「IBM」이란 이름만으로 선택되던 시절이 가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세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