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의 올 회계연도(96년 10월∼97년 3월) 사업계획은 절반짜리다. 따라서 매출목표도 그렇고 투자규모도 지난해보다 형편없이 적다. 지난 82년부터 15년간 지켜온 9월 회계연도를 올해부터 4월로 변경키로 했기 때문이다.
『세수 및 회계감사업무의 집중을 분산시킨다는 정부방침에 부응해 지난 82년부터 회계연도를 9월로 맞춰왔으나 기업현실 상 불합리한 점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다음 회계연도 사업계획을 정확히 세우기가 어렵고 인사 등 경영 전반에 무리가 따랐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따라서 29기 사업연도는 올 3월 말로 마무리하고 30기(97년 4월∼98년 3월)부터는 과감히 4월 회계법인으로 「새롭게」 시작할 계획입니다.』
올해는 곽정소 사장이 창업주인 선친의 뒤를 이어 한국전자의 사령탑에 오른 지 만 10년이 되는 해다.
『흔히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합니다. 결코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또 적은 시간은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제가 사령탑을 맡은 이후 줄곧 강조해 온 변화의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어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한국전자의 변화에 대한 그의 집념은 남다르다. 지난해 창업 27년 만에 사옥(양재동 소재 KEC빌딩)을 마련한 것이나 회계연도를 4월로 전격적으로 변경한 것도 분명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한국전자의 모습이다. 30기의 본격적인 도약을 위해 내실 다지기의 성격이 강한 올 「반쪽짜리 사업계획」에서도 변화의 고삐가 늦춰진 것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간 꾸준히 추진해온 변화의 실체를 올해는 확실하게 보여주는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는 곽정소 사장을 만났다.
-줄곧 강조해온 한국전자의 구체적인 변화의 방향과 실체는 어떤겁니까.
한국전자도 이제 보수적인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일차적인 발상입니다. 그저 제조 전문업체라는 이미지보다는 생산기술력을 앞세운 첨단 부품 종합메이커로서의 이미지를 갖춰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표인 저를 비롯한 종업원 모두의 가치기준 전환이 전제돼야 하며 당연히 이를 뒷받침해 줄 사업다각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자의 경영방침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일반적인 얘깁니다. 지난해 「본질경영」에 이은 올 「가치기준의 재정립」도 다소 철학적인(?) 색채가 강한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대로 피상적인 것이 아닌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구성원 각각의 인식전환이 시급합니다. 지난해가 한국전자가 추구하는 경영의 본질을 이해하는 해였다면 올해는 「현상유지적 전문업체」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가치기준을 각자가 재정립해 보자는 의도라고 굳이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특히 부문별 특성에 맞는 인사제도의 재정립으로 맨파워를 극대화하고 조직관리의 합리화, 그리고 개인별, 조직별 벤치마킹시스템을 도입해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어 보자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올 회계연도 사업계획은 6개월짜리라 계획수립에 적지 않은 애로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경영목표는 어떻게 잡고 계십니까.
일단 전체 매출은 전 회계연도 상반기보다는 22% 성장한 2천1백60억원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주요 부문별로는 반도체가 18% 증가한 1천4백50억원, 전자영상통신, 전자악기, 브라운관 등 전자기기부문이 7백9억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요 투자계획은.
반도체부문에서는 일관가공라인 증설 및 합리화부문에 2백15억원을, 조립라인 증설에 1백20억원, 그리고 R&D분야에 50억원을 투자할 생각입니다. 또한 전자기기부문에는 사업다각화를 위한 신제품 개발 및 공정합리화 부문에 25억원을 투자하고 환경안정 및 복지후생분야도 40억원을 투입해 30기 도약을 위한 땅고르기 작업에 만전을 기할 방침입니다.
-올해 핵심적인 사업전략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한국전자의 주요 사업부문은 크게 반도체와 전자기기부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반도체부문은 세계 톱메이커로서의 위상을 지켜나가기 위해 품질, 가격, 납기 등의 제고에 계속 박차를 가하고 고주파 및 강전용 제품비중을 보다 확대해 생산구조의 고부가가치화를 꾀해나갈 계획입니다.
전자기기부문에서는 철저하게 신규수요와 니치마켓을 공략하는 전략을 펼쳐나갈 생각입니다. 영상통신분야에서는 우선 데스크톱PC에 적용이 가능한 LCD 모니터를 주력 생산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이미 일본의 판매선인 아키아社와의 계약을 체결, 수출시장 공략에 먼저 주력하고 국내에서도 13.6인치 및 17인치 제품을 앞세워 국내시장 선점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또한 오리온전기로부터 생산라인을 인수한 흑백 브라운관시장은 짭짤한 니치마켓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존 브라운관업체가 대부분 컬러제품으로 주력을 전환했기 때문에 의료용, 산업용, 보안시스템시장을 중심으로 독점에 가까운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최근 전자악기시장에 새로운 마케팅전략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국내 수천개에 이르는 피아노학원을 대상으로 펼쳐온 「아마데우스 교육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교육전용 소프트웨어가 부착된 디지털피아노의 매출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이 교육 프로그램을 전국으로 확대해 초등학생들의 음악교육과 피아노 매출확대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생각입니다.
-사업다각화와 관련한 연구개발계획과 마케팅전략은.
한국전자 사업다각화의 방향은 정보통신사업과 전장사업 등 크게 이 두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각화의 실체는 이제까지 해온 반도체사업과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반도체를 기반으로 애플리케이션의 폭을 좀더 넓혀 나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보통신사업의 경우 단말기 등 시스템사업보다는 RF소자나 고주파필터 등 통신용 핵심제품의 개발과 고객요구에 대응한 모듈화사업에 주력할 방침입니다. 전장용 사업도 역시 정전압IC와 같은 강전용 소자의 개발을 확대하고 자동차업체와 공동으로 커스텀IC 개발과 전문인력 양성에 적극 나설 예정입니다.
-해외투자계획과 향후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현재 한국전자는 태국, 필리핀, 중국 등에 조립공장을 중심으로 생산기지를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단순 생산기지가 아닌 판매거점과 연계하는 경영효율 극대화 전략을 펼쳐나갈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선진국의 사례를 면밀히 검토해 거점별, 지역별 특성에 맞게 관리체제를 재정비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글로벌시대에 맞도록 국내외 매출이 50대50인 안정적인 구조를 확보해 나갈 방침입니다.
-올 반도체경기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또한 이에 따른 대책은.
반도체업체들의 경영환경이 지난 수년 전보다 어려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올 들어 세트업체의 재고소진이 마무리돼감에 따라 늦어도 연말부터는 회복국면에 들어설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입니다. 본래 경기라는 것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반복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요한 것은 불황때 호황을 어떻게 준비하는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전자와 같은 중견 전문업체들은 신제품 개발과 합리적인 조직관리에 힘써야 합니다.
한국전자가 최근 해외업체의 자문을 받아 도입키로 한 「KEC-OS」도 기존 조직관리체제를 개혁하는 혁신적인 관리시스템으로 앞으로 한국전자의 새로운 도약을 가져다 줄 골격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최근 시장개방에 대응한 시장전략과 정부의 전자산업정책과 관련한 의견을 말씀해주시죠.
그동안 국내 전자산업은 음으로 양으로 국가의 보호막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OECD 조기가입으로 국내시장 개방은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최근 경기위축으로 국내 전자산업이 활기를 잃고 있는 시점이라 걱정이 앞서지만 이럴 때일수록 국가, 기업, 개인이 모두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봅니다. 산, 학, 연 협동과제나 국책과제의 효율적인 수행이 좋은 방안이 되리라 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건수나 실적 위주의 정책보다는 실질적인 기술경쟁력 제고를 결과로 낳을 수 있는 정책입안자 및 수행자 등의 마인드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경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