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개발원이 우리 현실에 맞는 프로그램 등급제 도입을 위한 연구를 올해 집중사업으로 정하고 구체적인 연구, 조사에 들어감에 따라 국내에서도 TV프로그램 등급제 채택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올 하반기부터 구체화될 전망이어서 주목된다.
최근 정부는 청소년들을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보고 폭력과 음란성을 내용으로 하는 인쇄매체와 영상물에 대한 엄격한 처벌규정을 담은 「특별법」을 준비중이라는 보도다. 그러나 정부가 준비중인 이 특별법은 주로 음반, 비디오, 영화, 공연, 도서, 만화 등의 분야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TV프로그램 등급제는 비도덕적이고 선정적이며 폭력적인 프로그램로부터 어린이나 청소년 시청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다 세부적인 규제장치이다. 현재 국가마다 시행방법상에서 다소간 차이가 있지만 그 실시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안이 되고 있다.
미국은 문제가 될 만한 장면이 나오면 TV가 자체적으로 꺼지는 V칩을 도입할 예정이고, 프랑스는 지난해 가을부터 「부모동반 시청」 「단독시청 가능」 등 자막을 내보내는 프로그램 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일본도 이의 도입을 검토하는 등 프로그램 등급제 실시는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V칩의 도입에 앞서 이달부터 공중파방송은 물론 케이블TV, 위성방송 등의 프로그램에도 영화와 같이 청소년들의 연령층에 따른 「가청등급제」가 시험적으로 시작됐다. 이 가청등급제의 도입으로 미국 TV방송사들은 앞으로 방송하는 거의 모든 오락프로의 방영시작 전에 「가청연령등급」을 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미국 방송들이 이같은 연령층에 따른 등급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폭력과 섹스, 마약, 비도덕적 언어 등 각종 범죄 및 비도덕적 행위와 장면을 묘사하는 TV프로로부터 어린이와 청소년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우리 방송환경에서도 음란, 폭력성 프로그램으로부터 어린이와 청소년 시청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마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올들어서만도 각 방송에서는 드라마 「애인」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반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불륜, 선정성 등이 브라운관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선정성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폭력성이다. 각 방송에서는 지나치게 살벌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와 함께 케이블TV의 출범, 위성방송의 등장 등 다매체, 다채널시대를 맞아 프로그램 등급제는 방송내용에 대해 실질적인 규제를 강화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특히 올 연말부터 TV종일방송이 검토되고 있는 터라 함량미달의 프로그램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어 이에 대한 제재효과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같은 프로그램 등급제는 자칫 예술창작의 자유를 저해할 수 있다는 비난을 살 수 있다.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높이려면 방송사는 결국 그 내용을 순화할 수밖에 없고 이는 제작의도와 전혀 다르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 TV프로그램이 가뜩이나 미국 할리우드 영화와 프로그램에 잠식되고 있는 마당에 이런 검열을 실시하면 우리 프로그램은 더욱 경쟁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또 시청여부는 시청자들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지 정부나 방송국에서 등급을 매겨 시청여부를 강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TV프로그램 등급제의 성패여부는 방송계, 교육계,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어떻게 또한 광범위하게 수렴, 종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등급기준 마련, 공중파와 케이블TV, 위성방송의 통합관리문제 등 구체적인 세부내용에 대해 상당기간 의견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와 청소년 보호를 위해 TV프로그램 등급제는 절대 필요하며 선정적, 폭력적인 프로그램으로부터 시청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장치는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청소년 보호를 위해서는 더욱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