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통신기기제조업체 대표들, 현장위주 경영으로 탈바꿈

통신기기 제조업체 경영이 현장 중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요즘 웬만큼 알려진 중소, 중견 통신기기업체 사장들을 서울 본사 사무실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생산설비가 있는 공장에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 경영자들은 아예 집무실을 공장으로 옮겨 모든 업무를 생산현장에서 직접 처리하는 사장도 적지 않다. 간부회의까지도 생산현장에서 가질 만큼 철저하게 현장위주로 경영스타일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 경영자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간부진들도 어지간한 사안들은 전결로 처리하는 등 자율적인 권한이 대폭 강화돼 통신기기 중소업체들 사이에서 새로운 경영방식으로 정착될 전망이다.

팬택의 박병엽사장은 지난 해 9월께 준공한 김포공장에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다. 심지어 월요일 열리는 간부회의도 이 곳에서 열고 있고 주 2~3일은 김포 생산현장에서 팔을 걷어부친 채 종업원들과 함께 생산라인을 검점하고 있다. 국내, 외 바이어조차도 김포공장에서 직접 상담하고 있을정도다. 엠아이텔의 이가형 사장은 원래부터 현장위주의 경영자로 정평나 있다. 올들어 이같은 경영 스타일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생산라인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소비자들이 만족하는 질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신념에서다. 이사장은 특히 분당의 협력업체를 매일 방문, 생산에 따른 문제점들을 점검하고 있을 만큼 현장 경영을 믿음처럼 실천하고 있다. 델타콤의 한강춘 사장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사장은 통신기기 제조를 담당할 제델정보통신의 조기정상 가동을 위해 당분간 대외활동을 대폭 줄이는 대신 설비구축 작업에만 매진할 방침이다. 생산라인의 안정없이는 건강한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햄(아마추어무선사)용 장비를 생산하는 승용전자의 전상조 사장은 아예 지난해 10월부터 신림동 본사 집무실을 인천시 가좌동소재 공장으로 옮겨와 일을 보고 있으며 본사는 「가뭄에 콩나듯이」 가끔 들릴 정도다.

이밖에 텔슨전자의 김동연 사장도 올 초부터 생산공장을 불티나게 드나들고 있다. 경기도 광명시 소재 공장을 최근 인수한 구로동 소재 텔슨정보통신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스탠더드텔레콤의 임영식 사장도 현장위주의 경영이라는 점은 같지만 머무는 장소는 좀 다르다. 분당의 공장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현지연구소를 번갈아 방문, 품질위주의 경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임사장은 유럽형 디지털 이동전화(GSM)단말기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올초 이미 미국을 다녀왔고 다음 달에도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연례적으로 6개월에 한번씩 들르는 것에 비해 올해에는 미국 출장이 부쩍 잦아질 것이라는 전언이다.

이처럼 통신기기 제조업체 최고 경영자들이 올해들어 현장위주로 경영스타일을 바꾼 것은 그간 외형에만 치우쳐 온 경영으로는 최근 불어 닥친 경기불황을 적절하게 이겨낼 수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기위해서는 내실경영이 첩경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공장의 정상화가 곧 회사매출신장으로 직결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중소통신업체 사장들의 「탈 사무소현상」은 급속도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김위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