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 `97 미국 방송시장 기상도

올 한 해 미국의 방송업계는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위성TV시장은 성장할 것이며 일반 공중파방송과 케이블TV시장은 위축될 전망이다.

미국의 방송, 통신업체에 지난 96년은 연방통신법 개정으로 시작해 고선명TV(HDTV) 표준제정으로 막을 내리는 등 말 그대로 격변의 한 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신문지면은 업체간 인수, 합병(M&A)기사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거의 매일같이 컴퓨터 관련 신기술이 발표되는 등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는 소비자들의 말이 실감난 해였다.

그러나 얼핏 보면 혼란스런 이런 변화도 실제로는 일정한 흐름을 갖고 진행됐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즉 디지털시대, 기술통합의 시대로 특징지워지는 21세기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시대의 첨단에 서있는 미국의 방송, 통신업계를 지켜보는 관계자들은 올해부터는 그 윤곽이 구체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선 97년은 연방통신법 개정으로 인한 여파가 통신시장은 물론 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방송업계에도 상당히 밀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월트디즈니가 캐피털시티즈/ABC를, 시그램이 MCA를 인수하는 것과 같은 거대규모의 M&A는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다고 해서 조용한 한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거대규모 M&A가 없을 것이라는 확언을 거두게 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루퍼트 머독. 지난 87년 폭스방송 인수로 미국인의 뇌리에 미디어 거물이라는 깊은 이미지를 남긴 호주인 머독과 그의 뉴스사는 지난해 10월 자신의 존재를 미국인에게 재인식시켰다. 폭스인수 이래 가장 야심찬 미국공략 플랜이라는 평가를 받는 「A스카이B」 위성서비스 출범을 밝힌 것이다.

브리티시 텔레컴(BT)과 합병을 발표한 MCI 커뮤니케이션스와의 기존 제휴관계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머독은 이를 능가하는 제휴를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상으로는 디즈니와 지역벨사인 아메리테크, 벨애틀랜틱 등이 오르내리고 있다.

부문별로는 지난해 95년에 비해 가입자가 2배로 늘어나는 등 상당한 실적을 거둔 위성방송(DBS)시장이 올해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올해도 40% 정도의 성장으로 미국내 4백80만명에 달하는 소비자들이 이 서비스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너럴 모터스의 휴스 일렉트로닉스가 운용중인 위성방송 디렉TV가 성장기대치를 지난해보다 낮춰잡고 있고 28만5천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에코스타 커뮤니케이션스도 올해를 전진을 위한 내실을 기하는 해로 잡고 있는 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은 확실하다. 에코스타는 머독이나 지역벨사 혹은 텔레커뮤니케이션스사(TCI) 등 재정적으로 든든한 업체와의 제휴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블TV업계의 경우 성장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 업계 스스로도 지난해에 비해 높지 않은 성장수치를 잡고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던 초창기와 달리 케이블모뎀의 발전 및 보편화가 더디게 진행됨에 따라 업계는 올해 고속 서비스를 담보할 수 있는 케이블모뎀의 상용화 실험에 주력할 방침이다. 케이블TV업계로서는 디지털기술 개발을 방기하고 있다는 평가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그러나 업체들 나름대로 다양한 전술을 마련하고 있다. 업계 수위인 TCI는 각개약진 전략을 채택했다. 위성부문과 프로그램 공급 및 해외시장 개척부문 등으로 회사를 분리, 독립, 부문별 매출을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TCI가 위성TV서비스와 케이블TV서비스가 상호 경쟁하기보다는 의존을 통해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천3백만명의 가입자로 업계 2위인 타임워너 역시 분리, 독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또 어제의 적이었던 전화업계와 케이블TV업계가 동지로 변화하는 극적인 화해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화업계의 자금이 필요한 케이블TV업계로서는 전화업계에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는 것. 전화업체들도 올해는 케이블TV시장 진공보다는 폭넓게 구축된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춰가고 있다. 최근 대화형 TV사업인 텔레TV의 축소를 발표한 퍼시픽 텔레시스그룹은 무선케이블서비스를 확장, 3월부터 캘리포니아 남부 5백만가구를 대상으로 TV서비스에 나서기로 했다.

올해는 올림픽이나 대통령선거와 같은 특수가 없어 시장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존 일반 공중파방송업계는 시장확대를 선언했다. 위성TV와 케이블TV의 침식으로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일부에 대해 본때를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공중파방송업계는 지난 한 해 소극적인 시장전략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애틀랜타 올림픽과 대선으로 매출이 증가했다. 이들은 충전의 시대를 끝낸 올해를 도약의 시대로 선포하고 시장확장에 나서기로 했다. 별다른 커다란 이벤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매출은 4% 늘어 시장규모가 1백36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체별로는 제너럴 일렉트릭의 NBC가 해외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특히 세계 시청자를 상대로 한 케이블TV서비스를 본격화할 방침이다. CBS도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완전 독립을 끝내고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도 역시 케이블TV를 통해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자금부족을 느끼고 있는 CBS는 돈을 찾아 유니버설영화사의 소유주인 시그램과의 제휴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전망이 현실화할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관계없이 97년 미국 방송시장에도 「변화에 대응하는 업체는 성공하고 그렇지 않은 업체는 고전할 것」이라는 진부한 원칙이 관철될 것은 분명하다.

<허의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