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TV방송계의 97년은 대변혁의 한 해가 될 전망이다. 97년은 지난해 퍼펙TV의 방송개시와 함께 출범한 디지털 위성방송이 디렉TV재팬(디렉TVJ), J스카이B, J스카이D의 잇따른 사업진출로 본격적인 방송체제를 갖추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 디지털 위성방송은 데이터를 압축하기 때문에 중계기(트랜스폰더) 하나로 4∼8개 채널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다.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보다 많은 채널을 확보할 수 있고 시청자로서는 보다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받아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같은 장점으로 본격화하는 디지털 위성방송이 지상파TV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 TV방송계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특히 성격이 비슷한 아날로그 위성방송과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케이블TV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퍼펙TV와 3개의 후발 디지털 위성방송업체간에 벌어지게 될 주도권 다툼의 향배이다.
이토추商事, 미쓰이物産, 스미토모商事, 닛쇼이와이 등이 출자하는 퍼펙TV는 지난해 10월 통신위성 「JCSAT-3」를 사용해 70개 채널의 방송을 개시했다.
퍼펙TV는 방송개시 불과 2개월 만에 10만명의 가입자를 획득했다. 이는 아날로그 위성방송 관련 12개사의 가입자가 합계 15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성공적인 것이다. 오는 4월에는 가입자수 1백만명 확보를 목표로 채널수를 1백10개로 늘릴 계획이다.
이에 맞서는 J스카이B, 디렉TVJ, J스카이D 등 3개사는 오는 4월을 기점으로 순차적으로 사업을 개시한다.
미디어계의 제왕으로 불리는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스와 재일교포 손정의의 소프트뱅크가 50%씩 출자(총 2백억엔)해 설립한 J스카이B는 우선 퍼펙TV의 통신위성을 통해 오는 4월부터 12개 채널의 방송을 개시할 예정이다. 이어 내년 4월에는 일본새털라이트시스템의 통신위성 「JCSAT-4」를 사용해 약 1백50개 채널의 방송을 개시할 계획이다.
미국 휴즈 일렉트로닉스,
컬처컴비니언스클럽(CCC) 미쓰비시商事 등이 참여하는 디렉TVJ는 우주통신의 통신위성 「슈퍼버드C」를 사용해 올 가을부터 일거에 약 1백개 채널로 방송을 개시할 예정이다. 이밖에 아날로그 위성방송 프로그램 공급자 8개사로 구성돼 있는 J스카이D도 올 가을 20개 채널의 방송을 개시한다.
이에 따라 일본 시청자들은 올해 2백개 이상, 내년 봄에는 4백개에 가까운 TV방송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이 모든 프로그램을 볼 수는 없기 때문에 4개사간 시청자 확보경쟁, 즉 주도권 다툼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최근 「닛케이비즈니스」誌는 후발주자인 J스카이B의 우위를 점치고 있다.
그 이유로 첫째 통신위성의 위치를 들고 있다. J스카이B가 이용하는 JCSAT-4는 동경 1백24도에 위치하는데 퍼펙TV가 이용하는 JCSAT-3(동경 1백28도)는 물론 아날로그 위성방송인 NHK 위성방송이나 일본위성방송(와우와우)이 사용하는 방송위성(동경 1백10도)에 근접한다.
이 때문에 J스카이B에서는 퍼펙TV와 협의해 수신기나 안테나의 공통화를 추진하는 한편 방송위성과도 같은 안테나를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 작업이 실현되면 시청자는 한 개의 안테나로 퍼펙TV와 J스카이B를 합쳐 2백60개의 디지털 위성방송 채널과 방송위성의 아날로그방송까지 즐길 수 있게 된다. J스카이B로선 한층 많은 채널로 신규가입자는 물론 NHK방송 수신자도 자사 시청자로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디렉TVJ는 슈퍼버드C가 동경 1백44도에 위치하기 때문에 안테나를 공통화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채널수도 적고 NHK방송도 볼 수 없는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둘째 이유는 머독이 이끄는 뉴스의 국제배급망을 이용함으로써 일본 내 프로그램 공급자를 퍼펙TV나 디렉TVJ보다 유리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뉴스사는 현재 영국(B스카이B)과 독일(DF1), 아시아지역(스타TV)에서 위성방송을 전개하고 있고 미국과 남미에서도 금년 중 디지털 위성방송을 전개할 예정이다. 따라서 일본의 프로그램 공급자가 J스카이B에 프로그램을 공급할 경우 그 프로그램은 세계시장으로 전송될 가능성이 높다.
또 콘텐트 확보 면에서도 경쟁업체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 머독이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데다 뉴스 산하의 20세기폭스
스타TV 등이 자사 보유의 콘텐트를 J스카이B에 보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객관적 전력에서 J스카이B가 우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민간방송 등 프로그램 공급업체들은 이견을 달지 않는다. 또 이들 업체는 아직 디지털 위성방송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는 있지 않지만 J스카이B에 참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들이 참가하게 되면 J스카이B에 주도권이 돌아갈 가능성은 그만큼 높다. 이는 곧 일본 미디어계를 머독이 거머쥐게 됨을 의미한다.
통신위성을 사용한 디지털 위성방송의 주도권 경쟁이 벌어지는 97년은 일본 미디어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기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