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100)

마이크로 웨이브.

김지호 실장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중앙봉수대가 자리하고 있던 남산 정산의 마이크로 웨이브 중계소를 활용할 수 있다면 지금과 같은 통신망 사고 때에 적절하게 절체회선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안타까움이었다.

마이크로 웨이브를 이용한 통신은 유선통신망의 장애시 가장 절체가 용이한 통신장비다. 무선을 이용하는 데다, 장비의 이동이 쉬워 긴급 사태 발생시 운용이 용이하며 장비당 수용 회선이 많아 외국에서는 통신회선의 긴급복구용으로 많이 활용하는 통신장비다.

김지호 실장은 다시 한번 안타까움을 느꼈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 형편 때문에 보안상의 이유로 마이크로 웨이브 사용이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북한.

김지호 실장은 불현듯 북한을 떠올렸다. 만일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의 1호 맨홀에 발생한 화재가 방화라면 불을 지른 것이 북한의 소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일단 정확한 조사는 해보아야 한다. 하지만 맨홀의 특성상 출입이 극히 제한된 공간인 맨홀 속에서 케이블 교체와 같은 작업 중 실수에 의한 화재가 아니라면 누군가의 방화에 의한 화재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 이외에 화재가 발생할 요소는 거의 없다. 오늘 맨홀 속에서 작업한 팀도 없다고 하지 않았은가.

더욱이 맨홀은 통신을 전문으로 운용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철저하게 노출되어 있지 않은 시설이다. 국가 기간통신망의 보호 측면에서 보안도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수십만 회선의 통신 케이블이 수용된 1호 맨홀은 같은 회사 직원들도 통제를 받아야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누가 이익을 볼 것인가? 김지호 실장은 맨홀에 불이 나 통신망이 두절되었을 때 누가 이익을 보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갑자기 북한이 떠오른 것이다. 북한. 최근 북한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충분히 돌발적인 사고를 저지를 처지에 있었다.

동해안에 침투한 잠수함과 타고 있던 승무원의 처리를 두고 북한은 백배, 천배 보복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었다. 한참 전에는 김정일의 동거녀 성혜란 씨와 언니 성혜랑 씨 일행의 모스크바 탈출 소식이 전해졌었다. 당시에도 북한은 공식적으로 남한에 대한 철저한 보복을 강력하게 이야기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