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미국 개정통신법이 통과된 지 지난 5일로 1년이 지났다. 1934년 제정된 기존의 통신법 체계를 흔들어 놓은 96년의 통신법은 미국통신시장의 독점구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그 법안의 탄생을 축하하기 보다는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불안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소비자그룹은 이미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고 단정짓고 있다.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앨 고어 부통령이 『1주년을 기념하는 파티장에 나가는 모자를 쓰기보다는 장례식에 갈 까만 리본을 달아야 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96년 개정통신법에 따라 경쟁의 장이 완전히 마련되고, 요금이 인하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케이블TV의 요금은 계속 올라가고 케이블TV회사의 전화사업 진출 기미는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지방전화회사의 요금은 당분간 현추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다 지역벨사들의 방송사업진출계획도 원점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AT&T 같은 장거리전화회사들의 지역전화사업진출도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상황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
디렉TV나 프라임스타같은 직접위성방송서비스가 지속적으로 케이블TV의 가입자를 빼앗아가고 있고, 대부분의 전화가입자들에는 요금의 차이가 그렇게 중요한 판단요소는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분석가들은 대도시 시장에서는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지역시장이다. 고어 부통령조차도 현재의 진전상황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시인하고 있다. 『나는 이런 상황이 놀랍다』고 말하는 그는 케이블TV업체들이 1천억달러의 지역전화사업 진출을 후퇴하고 있는 것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곤 한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일단 96년 개정통신법의 저변에 깔린 전제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즉, 케이블TV업계가 전국적인 전화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케이블TV사업자들이 8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지역전화회사들과 경쟁상대가 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케이블TV회사들은 네트워크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드는 엄청난 비용을 알고난 뒤부터는 주춤거리고 있다.
나이넥스사의 토마스 토크 정부담당 부사장은 『통신법은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아마도 우리의 기대가 현실적이 아니었던 것 같다』 고 말했다.
연방통신위원회(FCC)는 AT&T와 여타 장거리전화회사들이 지역소비자들을 위한 경쟁에 나설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FCC는 지난 8월 장거리전화회사에게 지역전화의 접속을 용이하게 하겠다고 약속하라는 압력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전략은 몇가지 점에서 흠집을 낸 것 같다. 첫째, 지역전화회사가 FCC를 상대로 직권남용을 이유로 제소하게 만들어 그런 계획자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게 했다. 로버트 알렌 AT&T회장도 지방전화회사의 법률적 대응을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둘째, AT&T가 실제로 지역전화접속을 한다하더라도 가입자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의회는 통신법을 입안할 때 20년전 장거리전화시장을 개방한 것처럼 지역전화시장을 개방하고자 했다. 그러나 MCI 가 AT&T의 회선을 임대하던 그 당시와 장거리전화회사들이 지역전화회선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인 것이다.
한 회사가 지역 전화망을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엄청나다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전체 6백20만 킬로미터의 회선을 설치하는 데 2천7백억달러가 드는 것으로 FCC는 추산하고 있다. 장거리 전화망도 15만킬로미터를 구축하는 데 4백억달러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AT&T는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퍼시픽 텔레시스의 회선을 빌려 지역전화사업을 시작했다. 알렌 회장은 앞으로 몇 년안에 시장의 30%까지 가입자를 확보하겠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그 조차도 과감한 투자계획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소비자이익 옹호론자들은 「올해가 경쟁면에서 매우 힘든 한해」가 될 것이라 말하고, 소비자들이 바랄 수 있는 건 전화요금이 더 이상 인상되지 않는것 뿐이라고 자조한다.
<시카고=이정태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