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112)

새 한 마리.

그때 혜경은 새 한 마리를 보았다. 초가 지붕이 풀썩 내려앉았을 때 치솟던 불길을 따라 비상하던 새 한 마리.

챙챙, 소리에 맞추어 하늘로 비상하던 맹금(猛禽).

독수리였다. 검은 독수리.

혜경은 무당이 독수리로 변하여 하늘로 올르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은 슬픔이었다. 공포였다. 혜경 스스로의 잘못으로 일어난 초가 사당의 불길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무당이 독수리로 변하여 늘 자기를 따라다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불 속을 박차고 솟아오르던 독수리는 희열이기도 했다. 비상에 대한 경외이기도 했다.

폴폴, 가끔씩 솟아오르는 연기조차도 희미해질 때까지 혜경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버리지 못한 참나무 부지깽이를 꼭 움켜쥐고 형태도 없어져 버린 사당 부근에 남아 있었다. 공포에 떨면서도 혜경은 춤을 추며 불 속으로 뛰어들던 무당의 모습을 떨칠 수 없었다. 그 눈빛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공포였다. 희열이었다.

어두운 밤, 그때까지 버리지 못한 부지깽이를 거머쥐고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오면서 금방이라도 챙챙, 바라가 울리고 독수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자기를 채 갈 것 같은 생각에 치를 떨었다. 그러나 결코 두렵지만은 않았다. 온몸에 밴 불 냄새를 맡으며 어떤 황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냄새가 오래도록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혜경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무당의 눈빛과 독수리를 창연 오피스텔 1820호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다시 볼 수 있었다.

프로메테우스의 그림.

한쪽 벽면에 걸려 있던 프로메테우스의 그림을 보면서 무당의 그 눈빛과 불길 속에서 하늘로 비상하던 독수리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공포와 환희의 표정을 한꺼번에 띠고 있는 눈빛. 혜경은 그 그림을 보면서도 챙챙, 울리는 바라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심장을 후비는 소리였다.

맨홀에서는 계속 불길이 솟구치고 있었다.

시청 쪽 맨홀의 불길도 마찬가지였다.

혜경은 아련한 향냄새와 함께 멀리서 들려오는 바라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챙챙, 울려오는 바라 소리. 사이렌 소리,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 차량의 엔진 소리를 헤치고 다가들었다. 챙챙, 바라 마주치는 소리가 광화문 한복판 맨홀 속에서 치솟는 불길 위로 울려 퍼지는 듯했다.

혜경의 몸이 더욱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