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업체인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사가 디지털신호처리칩(DSP)에 사운을 걸었다.
최근 사업구조 조정을 벌여온 TI는 자체 경쟁력 평가결과를 토대로 방산분야 등을 포기하고 대신 DSP사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전략을 마련한 것이다. 20년 전 장난감에 말하는 기능을 부여하기 위해 개발했던 칩이 이 회사의 21세기를 밝혀줄 희망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 회사의 토머스 J 엔지버스 회장은 『우리는 이 사업(DSP)에 단순히 참여하려는 것이 아니라 승리자가 되고자 한다』며 DSP에 거는 기대를 분명히 했다.
당초 「스피크 앤드 스펠」이란 교육용 장남감에 적용됐던 DSP는 지금은 전자제품의 AV(오디오, 비디오)기능을 실현하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오디오 및 헤드폰에서 서라운드 사운드를 만들어내거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의 처리속도를 향상시키고 인터넷 통신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DSP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진공청소기의 소음제거기와 자동차 파워핸들 제어기 등으로도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TI는 기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DSP의 세계시장 규모는 올해 3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TI의 점유율도 45%에 이를 전망이다.
TI는 그러나 이런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공세로 이 분야 점유율과 매출을 늘려간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이 회사의 최대 사업인 메모리반도체분야의 가격폭락과 제리 R 전킨스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 그리고 최근의 통신기기 수요폭발로 인한 DSP 수요증가 등이 TI가 이런 결정을 내린 중요한 배경이 됐다.
TI는 이같은 일련의 사태에 처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사업부문에 대한 재평가를 실시, 정리대상과 투자대상을 구분했다. 그에 따라 지난해 장난감부문을 처분한 데 이어 올 들어서도 방산부문과 노트북컴퓨터부문을 매각했다.
TI는 반면 지난해 DSP 관련기업 2개사를 인수하는 등 이 분야에 대한 투자의지를 분명히 했다. DSP가 마이크로프로세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외 다른 반도체보다는 판매마진이 크고 시장상황도 성장세에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메모리의 가격폭락에도 불구하고 TI가 6천3백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DSP 때문이었다.
여기에 엔지버스 회장의 DSP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이 회사의 DSP에 대한 육성전략 수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 93년 사장취임 이후부터 20억달러를 투자해 DSP공장 2개를 건설하도록 하는 등 DSP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엔지버스는 전킨스 회장의 사망에 따라 지난 6월 후임 회장이 된 후, 사업구조 조정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방산과 DSP 중 어느 것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하는가 라는 경영층 내부의 논란에 대해 엔지버스 회장은 방산부문 매각을 전격 결정하는 것으로 DSP부문 육성의지를 강력히 천명한 것.
그는 이어 방산부문 매각대금을 DSP사업 확대에 투자할 계획임을 분명히 했다. 원칩화 등을 위한 연구, 개발(R&D) 투자를 늘리고 관련기업 인수도 추진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TI는 초미세 거울을 활용한 디지털 光프로세서 및 DSP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원칩화 등 DSP시장을 주도할 신기술 및 신제품 개발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또 인텔이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인텔 인사이드」를 부착하듯이 자사 DSP에 로고를 부착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DSP업체로서의 이미지를 확실히 다질 계획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TI의 DSP전략이 경쟁기업들에 비해 훨씬 폭넓고 과감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루슨트 테크놀로지스가 통신용 DSP 개발에 치중하는 등 주요 경쟁업체들이 한정된 분야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데 비해 TI의 전략은 훨씬 멀리 넓게 뻗어 있으며 R&D의 뒷받침도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따라서 현재의 추세라면 특정분야에서 경쟁기업이 TI를 앞설 수는 있어도 적어도 당분간은 시장 선두자리를 빼앗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세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