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제 "정밀성"에 눈돌려야 할 때

최근 발생한 서울 마포구 공덕동 가스폭발사고는 가스공급사들의 부정확한 도면이 사고원인이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전산화된 도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얘기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는 전산자료라면 「무오류의 완벽함」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으나 기초정보 입력과정의 사소한 오차가 자료의 큰 오류를 초래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사건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실증해준 사건이 공덕동 폭발사고인 셈이다.

우리가 흔히 고급품과 저급품을 구분할 때는 원자재의 질, 세련된 색상, 편리한 디자인 못지않게 정밀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어느 면에서 그 모든 기준 가운데 고급품과 저급품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정밀성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선진화 여부도 바로 사회 구성요소간 정합성, 정밀성이 결정지어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산업 수준도 제품 하나하나의 정밀 정합성없이 「선진」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세계적으로 그나마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 반도체산업이었고 그 반도체산업이야말로 정밀성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겐 분명 그만큼 정밀한 제품을 내놓을 능력이 있다.

그러나 손재주 차원의 정밀성은 타고난 듯 하지만 우리 의식은 그를 따르지 못한 듯 하다. 아귀가 잘 맞는 고급품을 만들어낼 손재주는 있어도 그런 손재주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부족한 것이다.

최근 상공회의소는 물류기기 표준화가 아직 멀었음을 밝혀주는 자료를 발표했다. 물류기기 가운데 KS규격에 맞는 제품이 4.5%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KS규격이 제정되지 않은 품목이 많고 규격이 제정된 품목마저도 기기간 정합성, 호환성이 매우 낮다고 이 자료는 밝히고 있다.

민간이나 정부 모두가 정확함, 정밀함이 현대사희에서 얼마나 긴요한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산업이 발달하면 할수록 정확함, 정밀함은 기업의 사활이 걸릴만큼 중요한 문제가 된다. 더욱이 미래사회를 지배하게 될 정보통신산업에 있어서 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멀리 내다보기 전에 우리는 당장의 불경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이 문제에 좀더 천착할 필요가 있다. 표준화없이 생산공정의 자동화를 이루기 어렵고 생산공정을 자동화하지 않고 원가절감을 이루기는 어렵다. 생산제품의 경쟁력 문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품의 표준화보다 중요한 것이 과정의 표준화다. 과정의 표준화는 정밀함없이는 무의미하다. 정확함이 정밀함을 낳으며 제품의 정합성, 부품간 호환성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이제 우리도 좀더 세밀한 데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정부도 표준화에 대한 관심을 좀더 높여야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기업이 정밀한 결과물을 위한 표준화에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선진국 진입을 외쳤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샴페인을 일찍 터뜨렸다는 외국 언론의 비웃음은 어찌 보면 사회 구석구석이 그렇듯 제품 하나하나에 정밀함이 부족한 산업을 내세우며 자만하는 데 대한 비웃음일 수도 있다.

미래사회에서는 큰 틀을 보는 안목도 중요하지만 작은 요소 하나도 소홀히 보지 않는 세밀함이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상 숲만 보고 나무를 보지 않는 어른들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도 세밀한 관심을 잃어가고 늘 엉성한 결과에 아무런 느낌을 못갖는 그런 어른들의 복사판으로 자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룡은 빙하기를 못넘기고 멸종했지만 개미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생존해온 동물로 아직도 꾸준히 번식해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배우자. 큰 것과 작은 것은 크기만큼 가치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망원경보다 현미경을 가까이하는 새로운 시각의 정립을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