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허상현실"과 보편윤리

실상(實像)의 반대개념은 허상(虛像)이지 가상(假像)이 아니라는 뜻에서 「가상 현실」보다는 「허상 현실」이 좀더 적합한 술어라고 생각하는데, 명칭이야 어떻든 그것이 점차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요즈음 동물복제가 인간복제로까지 연장되지 않겠느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논란이 일고 있지만 「허상 현실」을 활용하면 윤리적인 부담이 좀 덜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실제로 「허상 현실」은 의학 분야에서 활용이 시작됐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UNC)은 생화학공학에서 이를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시각적, 청각적 전시방법과 귀환장치를 활용해 분자들의 결합을 점검한다. 「허상 현실」은 또한 X레이 투시를 위해서도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특히 암 수술 전에 이루어진다.

메릴랜드의 로크빌에 있는 하이 텍스플레네이션스라든지 코네티컷의 우드베리에 있는 시에에드 같은 몇몇 회사들은 의학훈련을 강화하기 위해서 일종의 「전자 신체(Body Electronic)」로서 「허상 신체」를 만들어 낸다.

미래에는 의학도들이 허상 신체들을 해부함으로써 해부학을 연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인체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싸고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의학도들과 외과의사들은 새로운 처치를 시도하기 전에 허상적 외과수술을 실행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특수 환자를 위한 수술도 실행하게 될 것인데, 환자의 특이한 신체적 특징들이 이미 컴퓨터 속에 철저히 입력된 상태이다. 처리에 관계되는 의과대학생 또는 의사를 점검하기 위해 여러가지 질병과 의학적 긴급사태에 대비한 유사한 방안들이 고안될 수도 있다.

환자들이 자신들의 신체 일부를 시각화하는 것을 도와 치료하기 위해 「허상 현실」을 사용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허상 현실」은 긴장을 풀 수 있는 쾌적한 세계를 마련함으로써 긴장이완 기술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왕 몸 이야기가 나왔으니 「허상 현실」과 연관해 뒷공론이 많은 섹스 문제도 거론해 보자. 이른바 「허상 섹스」는 지금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몇몇 저자들은 이를 텔레딜도닉스(Teledildonics)라고 부르는데, 딜도(Dildo 또는 Dildoe)가 비속어로 음경모양의 성구(性具)를 뜻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와 같은 조어의 의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뉴욕의 우드사이드에 있는 「싱킹 소프트웨어」라는 허상 현실 회사는 「사이버 섹스 머신」을 판매하고 있는 등 「허상 현실」에 근접하는 멀티미디어 성경험들이 존재한다. 이 제품들은 물론 아직 그리 발전한 것은 못된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촉각경험을 산출해내는 데 장애가 되는 많은 어려움들은 틀림없이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특히 이를 이용해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허상 현실 기술공학을 이용해 진보된 「섹스 머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래에는 「허상 현실」을 이용해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통한 성적 만족도 가능해진다는 주장이 전혀 어이없는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보라면 진보가 성적 착취로 귀결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현재에도 인터넷에 약 9백개의 핫라인과 섹스 사이트가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것이 미칠 가공할 만한 폐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과학기술 발전의 윤리적인 차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예컨대 「허상 현실」 속에 성서의 장면들을 만들어 내는 정도의 관심으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전망할 때 지구적 차원에서의 보편윤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문화정책개발원장, 서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