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158)

우리나라 땅에 불법으로 통신시설을 설치하고, 그 통신선 보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주둔하겠다는 러시아와 일본.

당시 조선에서는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 내에 설치한 통신시설을 국제적으로 영구히 합법화하려는 획책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했다. 러시아와 일본 간에 맺은 비밀협약을 러시아와 일본은 우리 정부에 대해서 비밀로 하였던 것이다.

진기홍 옹은 다시 요람일기를 읽어 내려갔다.

1904년 6월 9일. 곽산(郭山)전보사 전보.

「러시아 군인들이 진퇴하면서 전주를 베고 전선을 끊어 통신이 불통된지라, 새 전주를 세워야 되었기에 군수의 명령으로 각 면 각 리에 속히 지시하여 전주 1백72주를 긴급히 갈아세우고 통시시설을 복구하였는데, 이에 소요된 운반비 등 합계 2천2백36냥을 몇 달이 지나도록 지불하지 못하여 민원이 대단하니 하촉 바람.」

통신원 지시.

「전주 1백72주는 이미 다 수용한 것이고 비용도 마감된 곳이 있으니 받을 생각 말고 자군 조처(自郡措處)함이 가함.」

6월 10일. 북청(北淸)전보사 전보.

「북청 우사전보에 지난달 18일 상오 2시 러시아 병사 20명이 우편사에 와서 통신장비와 기타 기물과 우편물을 빼앗아 가고, 기마병 3백명이 당일 오후 2시에 남문 밖에 주둔하여 곡식과 땔감을 가져갔으므로 백성들은 다 피난하였음. 추후로 러시아 보병이 또 온다고 하오니 본관 거취는 어찌할지 하촉 바람.」

통신원 지시.

「이 일은 위에서 알아서 조치할 것이로되 신지(信地)는 천동(遷動)하지 말고, 통신사무도 정지하지 말고 북청전보사와 우편사의 형편을 수시로 상세히 보고할 것.」

함흥전보사 전보.

「음력 4월 19일 하오 10시경에 러시아 병사 20여명이 원산으로 향하고 일부는 정평(定平)으로 향하고 있다고 함. 현재 전보사에 남아 있는 통신기자재는 괘종(掛鍾) 인장 등 일부분만 남아 있고, 통신기 1좌는 40리 밖에 두었으며 기타 통신기자재는 러시아군이 모두 가져갔음. 다행히 인명은 보존하였사오니 하촉 바람.」

통신원 지시.

「전보 내용은 알았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는지라. 요새 형편을 듣는 대로 수시로 보고하되, 통신하는 장소는 옮기지 말고 주변 형편을 비밀히 탐지하여 보고할 것.」